봉우사상을 찾아서(40)


 

- 1988년 봉우선생님 특강입니다. -

(녹음: 김각중, 녹취: 박승순, 교정, 주석: 정진용 • 정재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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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봉우선생님 특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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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단학회(韓國丹學會) 연정원(硏精院) 설립과 《단(丹)》 책이 나오게 된 계기>


봉우선생님 : ......하는데 이걸 해야할텐데 지가 몸이 좀 괴로와서 기동을 잘 못합니다. 그런데 오늘도 와서 뵙기라도 하고 간다고 그러고 왔습니다. 여러가지를 다 용서해주십시오. 그래 서서.. 오래 서있질 못하고 어지러워서 자꾸 빙빙 돌기 때문에 헐 수 없이 앉아서 얘기를 해야겠습니다.


  저희가 여기서 지금 공부하는 것이 그게 이제 본법은 호흡하는 공부.. 조식하는 공부지 다른게 아닌데, 단학.. 한국단학회(韓國丹學會)라고 이렇게 이름을 짓게 된 원인이 저희 자의가 아닙니다. 남의 타의라고 하기 좀 안됐지마는 ‘이 법은 호흡하는 법이다.’ 그것이지 ‘단(丹)’이니 뭐니 그 소리를 떠나서 있던건데. 우연한 기회에 지금부텀 작년.. 벌써 3년째가 됩니다만, 초능력을 가졌다는 유리겔라라고 하는 사람이 조선을 댕겨나간 뒤에, 저작자, 문인들, 대학교수들 이래 10여명이 왔어요. 저한테 찾아왔는데, 와서 개탄을 하는데 뭐라고 하는고 하니,


  “조선이라곤 예전부텀 조상들이 뭘 정신수련도 하는게 있다, 뭐 있다, 뭐 뭣 뭣 이런 소리들이 전해 내려오는 말들.. 야담처럼 전해 내려오는 말들은 있는데 (실상은)아무것도 없고, 유리겔라인가 그 사람은 지금 와가지고 여기 와서 참 뭐 실지로 구경시키는걸 보면 세계의 초능력자여. 그 우리나라엔 아무것도 없지, 묵은 역사도 없다.”


이런 소리를 해서, 나이가 좀 먹어서.. 저기도 노인 한분 계시지만, 나이가 먹어서 젊은 사람들이 그런 소리 하는걸 들으니까 귀에 거슬려요. 좀 거슬리는데, 저 사람들이 보통 공부를 안한 사람이라면 모르지만 뭐 박사, 뭐 박사 하고 다 닥터들입니다. 자기대로는 다 공부를 했다는 사람들이예요. 그러고 앉아서 와서 따지는 것이 듣고 앉아서 가만히 있지가 못하니까,


  “당신들 우리들 뫼인 자리 이 자리가 어디요? 대한민국 사람들이 뫼여 앉았고 백두산족들이 뫼여 앉은 자린데, 이 자리에서 유리겔라는 하느님만침 올리고 우리 조상들은 아무것도 못했다고 이렇게 본다면은 조상 알면은 씨를 모르고 뿌리도 모르는 사람들 아니요? 당신들이. 역사 역사 하는데 당신네 본 역사가 무슨 역사를 봤소? 우리나라 4천3백년 됐다는 단군기원 4천3백년이라고 쓴거 그것 봤소? 그러고 수백차례 남의 나라한테 침공 당했다는 그것만 써 놓은거 그것 봤소? 뭘 봤소? 무슨 역사를 봤소?”


하니까, 졸지에 좀 과격하게 나가니까 이 사람들이,


  “아 역사에 써놓은 대로 봤다.”


  “아 그러면 지금 일본 사람이 돼가지고.. 조선 사람으로 일본 사람(친일파)이 돼가지고 일본 역사를.. 일본 사람이 허라는 대로 맨들어 놓은 역사, 조선 4천년사라고 써 놓은거 그거를 옳다고 본 것이요? 그 중간에 무슨 역사를 가지고 얘기요? 중국 사람이 자기 나라보담 우리가 나중 나왔다고 하기 위해서 요임금이 25년에 단군이 여기서 나왔다고 해서 4천3백 몇년이란 단군기원 그걸 주장하는걸 얘기하는 것이요?” 하니까


  “아 그건 다 역사가 증거가 있다.”


  “당신 뭘 가지고 증거라고 보시오? 증거라고 하는걸 뭘 가지고 보시오? 역사 쓴 사람이 붓.. 헐적에 붓으로 남의 책에 있는거 그거 보고서 갖다 썼지, 하나라도 증거를 표 내놓고선 ‘이것이 그 증거요’ 하고 내놓은 사람이 누가 있소? 당신도 이 나라 사람으로 닥터 뭣 뭣 하고 학자라고 하면 학자답게 좀 노시오.”


했어. 듣기 싫은 소리를 했어요. 우리나라 역사라는 것은 최고(最古)여. 세계 인류사 중에 제일 최고로 오래된 역산데, 그 역사를 까뭉개기 위해서 별짓들을 다해. 그러나 그 증거를 지금 몇해라고 이건 잘 모릅니다. 최고 첫번에 제일 오래됐다는 것은 알아도 몇해라고 날짜까정는 알 수가 없어. 그동안 자꾸 말살은 됐고.



<봉우선생님 말씀으로 책을 만들자고 청한 필자>

05:33

  “그 당신들이 우리나라에서 본(本) 역사, 일본놈이 맨들고 중국 사람이 맨들은 역사 말고 본 역사로 우리나라에 전해 내려온 역사, 입으로라도 전해 내려온 역사, 사람들끼리래도 아무개 조상 아무개 아무개해서 전설처럼 내려오는 사기(史記)를 한번 하나 하나씩 들어보오. 예전 오래된거는 모르고 내 눈으로 본걸 얘기하리다.”


그러고 얘기를 했습니다. 얘기가 이 내가 어려서.. 어려서 본거, 이 조선 안에서 하던거 본거를 죽 얘기를 하니까, 이 사람들이


  “참말이냐?”


  “당신들이 사람 예사.. 사람을 깔보는 소리여. 건방진 소리하면 안된다고, 증거 똑똑이 대서 아무개 아무개 아무개 할아버지 아무개, 증조할아버지 누구 누구니까 가서 물어봐라. 물어봐서 그런 자리가 있고, 그런 말을 한 일이 있나, 사실이 있나? 없나? 알아봐라. 그걸 나더러 묻지 말고 왜 증거를 찾을라면 증거 나오는 자리 가서 물어보지 왜 나한테 묻느냐?”


  아 그래놔서 한참 하니까 이 사람들이 본디 내가 그 박사님들 대우를 않고 마구하니까 좀 기분은 좀 나빴겠죠. 그러더니 뭐라고들 해놓고선,


  “그러면 내일 우리가 책을 조사를 해보고, 또 저 그 본인한테도 가 물어보고 이러고 와서 물을테니까, 그때 좀 얘기 좀 해주시겠소? 시간을 내주시겠소?”


  “딴 일이 아니고 이것으로 와서 묻는다면 열흘도 좋고 스무날도 좋고 내가 다 얘기해주마.”


  그래놓은 것이 그 이튿날부텀.. 다 오지를 않았어요. 첫번에 한 20명 왔는데 그 다음날부텀 한 10명 왔습니다, 다 오지를 않고. 와서 아주 질문할거를 적어 가지고 왔어요. 뭣 뭣 뭣 자꾸 따지면서 질문을 따지는데 보름동안.. 보름동안을 아주 전적으로 하고, 그 다음에 또 새이 새이(사이 사이) 한것이 한 1주일 해서 3주일 동안 했습니다. 3주일 동안을 매일같이 와서 시간 뭐 늦게든, 나도 또 다른 일 별로 없으니까 시간 늦더라도 밤에 낮 할것없이 그러고도 이 사람들이 속썼였는데?, 제일 끝나는 날 뭐 가방을 가지고 오고 뭘 가지고 오더니 떡 내놓더니


  “선생님이 말씀한걸로 책을 하나 맨들라우.”

 

  “그게 무슨 소리여? 당신들이 질문해가지고 질문 내가 대답한 소린데 그거는, 동쪽 서쪽 동서남북에서 아무거나 자꾸 묻는거 그거 내가 마구 대답한 소리여. 하늘이라면 ‘하늘 천(天)’ 해놓고는 하늘이 뭣 때문에 하늘이냐고 한가지를 족 조리있게 말해야 그게 책이 되는거지, 야시장에 물건 내놓듯이 해놓은걸 가지고 책을 맨드는게 이건 말이 안되는 소리여.” 하니까,


  “그건 우리가 꾸밀테니까 걱정 없고, 선생님이 말하는걸 가지고 조리있게, 우리가 필자니.. 필자들이 책 맨드는 사람들이니까 그건 재주가 있다.”는거여.


  “재주, 거짓말 쓰면 안돼. 그러고 이거를 필자가 권태훈이라고 책 맨들었다고 하면은 내가 그 책 반대 할테요. 내가.. 내가 써놓지를 않았으니까 당신네들이 썼지 내가 한게 아니니 반대 할테니까 그렇게 알어.” 하니까


  그렇게 안할테니 걱정말고, 내 이름도 안쓸테니 걱정마라 이래요. 그래서 뭣을 가져왔나 하고 보니까 녹음 했어요, 그동안 20일 동안에 녹음한 것이 이렇게 쌓였어요. 그래 녹음 해가지고 속에서 듣고 한쪽에서는 묻고 대답하고 녹음 해놓고 하는것을 몰랐죠. 내 촌사람이니까 압니까? 그런거. 무슨짓을 하는지도 모르고 당했어요.



<《단》 책이 나온뒤 매일같이 찾아온 사람들>

09:50

  그것이 《단(丹)》이라고 하는 책이 나왔습니다. ‘단(丹)’ 내가 한 소리가 아니예요. 그 책 맨든 사람 자기들끼리 이게 괴상한 소리니까 아마 ‘단’인가보다 하고서 ‘단’이라고 썼지. 나는 ‘호흡법’이라고 했습니다. 조상들이 호흡하던거 조식하는 법이다, 조식하는 법을 가르치는 거다. 연진(硏眞) 조식(調息), 참것을 단련하고 조식을 한다. 그래 조식하는 법이다.

  그래 얘기를 한것인데 그걸 떼버리고 ‘단’이라고 써놔서, 이름은 안쓴다는데 권필진이라고 이름을 떡.. 성은 권가라고 하고 필진이라고 이름을 저희 맘대로 써놓고, 우학도인이라고 떡 해서 써 놓고, 또 그 다음에 이제 거기다 한게 내 사진을 냈습니다 거기다가. 내 사진 내니까 내 얼굴 아는 놈들은 다 알거 아니예요? 누구든지 보면 알지. 그 뒤에다가 내력을 쓰는데 ‘권 아무의 아들이다.’ 이래놨거든요. 권아무 아들이라면 내 선친(권중면權重冕,1856-1936)도 세상에서 남이 다 아시는 사람이니까, 아무개 아들이니까 지금 아무개로구나 이래 다 알게 됐어요.

  요만큼씩만 오시면 좋읍니다. 저희 집이 방이 조금 넓어요. 아침에서부텀 저녁까정 자꾸 계속 들어옵니다. 계속 들어와서 《단》에서 이러고 이러고 하는데 이건 뭣이요? 뭐 어떻고 자꾸 물어싸니 대답하기가 머리가 아파요 나중에. 하나 둘이래야지, 잠을 못잡니다.

  그래 첫번에 대답하기 시작을 했더니 시골서도 오고, 저 경상도서도 오고, 전라도서도 오고, 사방서 오지요. 오는 사람들이 이방 저방, 이방 저방 꽉 찼다가 이방에서 지금 왔던 사람들이 말 다 듣고 나가면 고 다음 또 들어옵니다. 고 다음 또 들어오고 “아 저희는 이틀째 묵었습니다. 이틀째 묵어.. 사흘째 묵었습니다 하니까 말이라도 좀 듣고선 가야겠습니다.”

  ‘그 당신네 나 잠 좀 자야할테지 원.. 내 볼일이 있으니까 못하고 당신네 얘기 들을거 없소 가시오. 책 보면 되지 않우?’ 이런 소리 하는건 너무 무례한 소리고, 한 사람한테래도 얘기를 해준다고 얘기 자꾸 하다보니까... (그전에는) 건강했어요, 건강한데 건강이 불건강해져요. 잘 못먹고 잘 못자고 하니까 건강치 못해져요.



<단학회(丹學會)라는 명칭으로 강습 사무실을 내시다>

12:40

  그래놓으니까 젊은 사람들이 “그러지 말고 단학, 이왕 단학이라고.. 단이라고 했으니 단학 그대로 그 이름으로 짓고 단학회(丹學會)라고 해서 저 이렇게 사무실에 강습시키는데 하나 맨들어 봅시다.” 그래 시작들을 했습니다. 시작들을 해서 서울서도 이 자리 저 자리 가서 그냥 첫번에 저 회원으로 모집 않고 그냥 가서 강의한 것이 ○○○○니까 한것이 유관순 회관, 방송국, 뭐 어디 어디 댕기면서 한.. 한 20군데 댕기면서 했어요. 그래 꽤 많이 들었어요.

  그러고 난것이 나중에 회(會)로 그렇게 아주 공부 정식으로 했으면 좋겠다고 해서, 대답하기가 난처하니까 “단학이라면 단학이라고 해라.. 단학이라고 해라, 그대로 해라. 나중에 그게 기다 아니다 하는거 나중에 알면 될것이고, 이렇게 해서 내놔라.” 하니까, 먼저 그 단학회라고 냈습니다. 해서 먼저 내 놓으니까, 그 전에 나한테 한달 두달 석달동안 이걸 돌아댕기면서 나한테 와서 그거 이제 호흡법이라고 해서 배우던 사람들, 이 사람들이 간판을 붙이면 여기도 붙이고 저기도 붙이고 해서 한 20명 붙이더구먼요. 근데 그 사람들도 똑같애요. 녹음 다 해놨던거니까 내 녹음 갖다가 거기다 걸어 놓고 녹음 시킵니다(녹음한걸 들려줍니다). 뭣 물으면 대답이 이렇게 이렇게 한다는거 녹음 갖다 시켜놓고 하니까, 이제 그 다음에 “왜 너 남의 녹음 가지고 니가 글로 쓰느냐?” 하니까, 고 똑같은걸 다른 사람 저희 사람 시켜서 또 녹음시켰어요. 기가 맥혀요들 재주들이 용해.



<대황조의 가르침을 전하고자 대학(大學)을 내놓으신 공자>

14:43

  그런데 이것이 저 젊은 사람들은 혹 모르지만 한문 좀 읽으신 이는 다 알아요. 한문 좀 읽으신 이는 다 알게 되는 것이, 공자가 조선족.. 백두산족이여. 자기 조상이 이 백두산족이었는데, 은(殷)나라에.. 은나라에서 망하니까 저 주(周)나라에 할 수 없이 들어가서 거기서 이제 백성 노릇을 하면서, 그 양반이 우리 단군 예전 꼭대기 대황조(大皇祖) 그 양반이 이걸 가르치시던건데, 가르치시던 법을 전해놔야지 안 전해놓을수가 없으니까. 도(道)라, 덕(德)이라 두가지를 이렇게 해서 얘기하실적에, 중국 사람들은 자꾸 자기.. 자기들 조상들이 해놨다고 이런 소리를 하니까, 그 양반이 도, 덕 우리 사람들.. 이 사람들이 할것을 대학(大學)이라는 것을 하나 냈는데, 대학이라는 책이 아니고 촌에 있는건.. 향교(鄕校?)에 있는건 향학(鄕學)이 될테고, 도(道:행정구역)에 있는건 조금 더 큰 학(學)이 되고, 예전에도 서울에 있는 국학(國學)이 그게 대학입니다.

  국학이 지금 같.. 조선 같으면 성균관에 있는 그 학(學)이 그게 대학인데, 거기서 가르치는 것을 대학으로 형이상학하고 형이하학하고 두 가지를 겸해서 가르치시는건데, 대학이라는게 지금 저 용학논맹시서역(庸學論孟詩書易) 이런 칠서(七書:사서삼경) 할적에 용학(庸學)이라고 하는 그게 이제 대학입니다.


  대학에 도와 덕이라는거, 도라는거는 형이상을 말한거고.. 형이상학을 말하는거고, 덕이라는 건 형이하, 유물론이고 이건(道는) 유심론입니다. 고 두가지를 노놔서 가르치시.. 저도 예전에 했어요.

  그런데 그 토가 이상합니다. 토가 지금 공자님이 먼저 맨들어 놓으신 데는 토를 안달아 놓으셨죠. 그냥 글자만 써 놓았는데, 뒤에 주자(朱子).. 주자 그 어른이 귀절을 찍어 놓으셨어요. 주자 성잔데, 대현인데 그 어른이 모르고 그러실 리는 없어요. 뒷사람이 혹 곡해 할까뵈 일부러 그러신거 아닌가 그렇게들 봅니다. 학자.. 학자들이 말은 안하면서도 차마 주자가 하신거니까 말을 못하면서도 이건 부러 그러신거다 이렇게들 보지요. 다른데 해 놓은게 또 있으니까.


  『대학지도(大學之道)는 재명명(在明明)하며』 대학에 가르치는거 제일 꼭대기 와서 국학(國學)에서 배우는게, 형이상학은 선천에 밝았던 머리를 다시 후천에 밝히는데 있으며,

  『덕(德)은 재신(在新)하며』 덕이라는 것은 유물론이니까 자꾸 새로워져. 새로워지는데 있으며, 그런데 게다 ‘친할 신(新)’자 하나를 더 써놨어요. 재신하며 재친하며 이거예요. 서로 친하는데 있다. 그게 덕이다.

  『민(民)은 재지어지선(在止於至善)이라』 백성은, 나라 임금한테다 바치는 글이니까 ‘백성은’ 할테지만 사람은 하는게, 사람은 재지어지선이여. 그 형이상학이나 형이하학을 공부할라면 제 최선의 노력을 해야한다. 지어지선이여, 최선의 노력을 해야 성공을 한다.


이렇게 말씀하셨어 ○○○○. 그런데 주자께서 귀절을 띄기를 어떻게 하셨는고 하니,


  대학지도(大學之道)는 재명명덕(在明明德)하며 도는 명명덕에 있으며, 민(民)은 재지어지선(在止於至善)이니라. 백성은 지어지선이니라. 아, 백성이 아니여

  『대학지도(大學之道)는 재명명덕(在明明德)하며, 재신민(在新民)하며, 백성을 새롭게 하는데 있으며, 재지어지선(在止於至善)이니라』 이래놨어. 그러면 그게 한 덩어리가 돼지. 유물론, 유심론이 없고 한 덩어리가 되어버렸단 말이야.



<대황조님 심법(心法) - 유정유일(維精維一)이오사 윤집궐중(允執厥中)이라>

19:20

  공자님이 몇번을 심법(心法) 심법 하신데가 있는데, 왜 심(心)은 어디로 가고 물(物)만 가지고 얘기 하셨냔 말이야. 공자님이 《서전(書傳:서경)》을 산시서(刪詩書:시경,서경을 옳게 정리함)하고 시서(詩書)를 만들어.. 전부 맨들으실때, 《서전》의 제일 꼭대기가 요(堯)임금이 순(舜)임금한테 전하는게 이 백두산족들이니까 순임금이나 요임금이나 둘이 다 백두산족들인데 당신네 조상 우리 제일 먼저 나신, 이 세상 사람은 그냥 단군 단군 하지만 단군은 나중 임금 되신 이가 단군이고, 임금 되시기 전에 대황조님 그 양반이 첫번에 가르칠적에 『유정유일(維精維一)이오사 윤집궐중(允執厥中)이라』 ‘그 정(精)하고 하나(一) 돼야 그 궐중을.. 가운데(中) 붙든다(執)’ 이랬거든.

  조상이 그런걸 해서 이게 이렇게 내려와서 요임금도 그걸 가지고 순임금한테 전하고, 순임금도 우.. 하우씨(夏禹氏)한데 그걸 가지고 전했어요. ‘유정유일이오사 윤집궐중’이라는걸 가지고 전했는데, 이렇게 쓴 글자가 이게 ‘가운데 중(中)’자 아닙니까? 이 가운데 중이라는 것은 누가 보든지 전 덩어리 어디든지 가운데를 가운데라고 해야 할겁니다. 근데 이렇게 쓴 가.. 이렇게 쓴 가운데 중자는 꼭대기서.. 꼭대기서 아래로 죽 나오는데, 그 가운데는 됩니다 이렇게 죽 그게. 이렇게 된 ‘입구(口)’에다 이렇게 죽 내는데, 위에서 아래로 가운데는 되지만.. 경(經)으로 가운데는 되지만 위(緯) 가운데가 없습니다. 위 가운데가 없어요.

  그래 공자는 유정유일이오사 윤집궐중이라고 한것 요 가운데를 요걸 그어 놓아야 된다 이거여. 요 가운데 그어 놓아야.. 이게 뭐냐? 이것이 한량없이 몇억년전 몇천년전 해서 죽 내려오기만 했지, 내려오는데 어쨌다는거냐?

  요것이 요임금때는 요임금이 무슨 법으로 요렇게 해서 요렇게 했고, 고 다음에는 누가 어떡하니까 요렇게 됐고, 요기다 요걸 그어 놔야 이것이 역사가 되는거예요. 사람들 되어 나오는데도 뱃속에 처음 들때 보통 여기서 죽어 갈때까정 이게 다 ○○○ 이렇게는 되지만, 요기는 뱃속에 들어갈 때고, 요건 낳을 때고, 요건 클 때고 요것이 있어야 된단 말이야. 윤집궐중이라는게 말이야.


<공자께서 대학을 만들어 놓고도, 뒷사람이 모를까봐 역(易)에 설명을 부연하심>

22:01

  이걸 알라면 무엇을 해야하느냐? 이 양반이 대학을 만들어 놓으시고도 그래도 답답해, 뒷사람이 모를까뵈. 『역(易)은 무사야(無思也)하며 무위야(無爲也)하야 적연부동(寂然不動)이라가 감이수통천하지고(感而遂通天下之故)』라고, 역이라는게.. 역학(易學)이라는게 물리.. 과학을 전부 정신이나 과학을 다 보는건데, ‘무사야하며 무위야하며 적연부동이라가 감이수통천하지고라’. 아무것도 하는게 없고, 무위야.. 하는것도 없고, 사사로운 아무 생각도 없고, 가만~히 앉았다가 적연부동이여. 꼼짝 안하고 가만히 앉았다가 감이수통천하지고여. 감동해서 천하의 연고를 그냥 다 알아낼 수가 있단 말이야.

  그게 무슨 소리냔 말이야? 그게 호흡하란 소리예요. 앉아서 호흡을 하면 선천적으로 전생(前生)에 우리가 이제 전에 알던거, 밝았던 것이 환하게 도로 밝아져.. 낼 수가 있다 이거여. 지금은 유리에.. 유리가 거울이 되지만 예전엔 쇠가 거울입니다. 쇠가 거울인데, 쇠에 가만두고선 거울이라고 들여다봐야 거기에 얼굴이 뵐 리가 있습니까? 먼지 꺼멓게 됐든지 누렇게 됐든 쇳덩어리지. 이놈을 자꾸 갈아야 됩니다. 자꾸 갈아서 번들번들 하면 환하게 들여다뵙니다. 또 물가에 가서 가만히 앉아서 물이 흘러내려 가는데 들여다봐서는 얼굴이 그림자에 가서 물결이 이렇게 출렁되면 얼굴이 백도 되고 스물도 되고 출렁 출렁 해나가지만, 물이 고요하고 무사야하며 무위야여, 가만할때 들여다보면 저 몇십리 밖에 있는 산도 여기 와서 환히 뵈고 자기 얼굴도 환히 뵙니다. 고요하면 알수가 있어요, 조용하면 알수가 있어요. 뭘 한결같이 하면 알수가 있다. 그 아주 간단하게 말씀하셨어요.



<지감(止感) · 조식(調息) · 금촉(禁觸)>

24:12

  그래 지금 이 우리들이 그냥 말하는 대황조라면 알진 못하실듯 해. 얼른 모르고, 단군이라 해야 잘 알기가 쉬운데. 조상 대황조께서 세상 사람들 그때 우리도 개벽이 몇번 했던지 개벽해가지고 온통 흐트러진 민족들을 모아다 놓고선 사람답게 가르치신다고 하실적에, 지감(止感) · 조식(調息) · 금촉(禁觸) 했어요.


  지감(止感), 감정(感情).. 감정에 따르지 말어. 저 사람이 나한테 좀 달게 한다고 좋아하고 조금.. 조금 제 비위에 틀린다고 나뻐하고 싸움하지 마라 이 소리여. 지감해, 그 뭐 욕심내는거 나도 하나, 저기도 하나, 저기도 하난데 이놈 하나를 더 가져오면 내가 더 잘먹겠다고 남의것 더 가져오지 말고 내것 내가 하고, 정성껏.. 정성껏 일을 하면 부지런히 하면 좀 더 들어오는거 먹는거, 내가.. 내가 벌어서 먹는게 어때? 그렇게 해라. 이거 지감 조식 금촉을 해라 이거여.

  지감을 하면 욕심이 나지 않으면 머리가 좀 고요해져 맑으니까. 지감을 하고서 조식(調息)을 해라. 다른 생각을 잡생각 말고선 숨을 쉬어라, 숨을 고르게 쉬어라. 고르게 쉬면 안정이 되가지고선 머리가 밝아진다. 밝아지면 얻음이 있다. 다른 사람 하나 아는데 나는 둘 알고, 둘 아는데 넷 알고 열 알고 이렇게 많이 잘 알아지면 이 사람보담은 아는게 많고 허는게 많으니까 들어오는 것도 많지. 그런데 얻음이 있어, 얻음이 있지만 금촉을 해라.

  금촉(禁觸)이라는건 내 한계에 마땅하게 하지, 덮어놓고 끌어대진 말고. 그러나 세상 사람은 안그럽니다. 세상 사람은 나라라도 한 나라가 조금 탄탄하게 지내면 요것가지고 잘 지내면 잘 지낼텐데, 옆에 있는 나라 약한 나라 고놈도 뺏어서 먹고 싶고, 또 좀 더 큰 놈 또 먹고 싶고, 저쪽에서 올까뵈 막으면 좋을텐데 막는거 갖고서 쳐서 내가 먼저 뺏어버리고 싶고. 그 욕심을 낸단 말이야. 그러니 욕심을 내지 말아라. 욕심을 내지 말고.. 강해지더래도 욕심을 내지 말고 제대로 잘 살아라.


  그게 지감 조식 금촉이라는게 우리 행세, 사람으로서 누구든지 다 해야할 일. 그런데 지금 예서 우리가 하고 앉았는 예전의 조식법이라는 것이 딴데서들 떠드는거 얘기 모양으로 재주가 나오질 않읍니다. 재주는 안나와요. 그러나 머리는 틀림없이 좋아집니다. 선천적으로 머리가 좋은 사람도 있지만, 둔재.. 둔재해서 아주 하급 저.. 학교 댕기면서 시험을 보자면 뭐여? 제일.. ‘가’자나 이런거나 받고 다른건 받지 못하는거. ‘수’ ‘우’ ‘미’ 여긴 근처에도 못가던 사람도 이거 애들 반년을 하던지 일년을 하든지 하고서 시험을 가(서) 보라고 해.. 애더래도 시험을 가 보라면 ‘수’자 ‘우’자 잘 받아와요. 머리가 좋아지니까.



<공부를 통해 머리가 비상해진 사람들... 이광수, 최남선, 한용운 등 8인>

28:03

  예를 들어서 다른거 예는 고만두고 우리나라서 머리 좋다고, 소설가의 춘원(春園) 이광수[李光洙,1892~1950], 그 사람 눈으로 보는게 저 글.. 입으로 글을 읽는게 아니고 눈으로 본다고 해서 목독(目讀)이라고 그럽니다. 하루 책 이렇게 쌓아놓고 다 봐. 굵은 글자면 모르지만 그 잘디잘게 박은놈 그놈을 가지고 뭐 수만 페이지 되는것도 하루 다 본단 말이야. 많이 보니까 학자로도 이름이 나는 학자가 됩니다. 열번 본 놈하고 백번 본 놈하고면 백번 본 놈이 나을건 사실 아니예요?

  이광수가 그랬고, 최남선[崔南善,1890~1957]이가 그랬고, 한용운[韓龍雲,1879~1944]이가 그러고, 임규[林圭,1867~1948]가 그러고 그때 여덟이 공부했어요. 여덟이 공부했는데 여덟이 선생님.. 한 선생님한테 공부했습니다. 그걸 뭘 공부했냐? 이 머리 좋아지는 거예요. 백배.. 백배 낫다고 그랬어요. 100일에 다른 사람 100일 공부하는거 하루에 한단 말이예요. 그 거짓말인가 그랬어 첫번에. ‘저 사람들이 말하는게 저게 거짓말이지.’ 그랬는데 나중에 젊은 사람들 시켜보니까 열배 스무배는 예사 나요. 웬만침 한 1년만 하고 나면 벌써 하루종일 이런 큰 책 한권 보던 놈이 한 20권씩은 예사 봐요. 이제 고만침 머리 좋아지는거는 사실이여 확실히.


  이제 그러며 연구해 나가는데 연구력이 남보다 수월하게 나아요. 그래 이건 나는 내 알던 선배들이 그런것들을 많이 하고, 역시 조금 나도 경험해 봤어요. 많이는 못했어도 조금 경험해 봤습니다. 내가 여섯살에 이걸 공부할땐데 처음 호흡을 했습니다. 진도 가 있을적에 그때 처음 우리 어머니한테서 배워가지고선 그걸 공부했다고 할때, 남들이 우리같이 둔재바리 천재라고들 알고 그랬어. 여섯살에 1년 호흡을 해가지고서 일곱 여덟에 《주역》 한권은 나이 어린놈 주역 가르치면 못쓴다고 (해서 못읽고) 사서삼경(四書三經)을 다 읽었어요. 보면 외지니까, 그게 버렸어요 사람을. 그 자꾸 해야 하는데 보면 외지니까 한번 보면 외지니까 이책 보고 저책 보고 책만.. 책장사 모양으로 책만 머리에 들어간 것이 그것만 그뜩 들어앉았습니다. 한가지로 들어갔으면 나도 뭐 성공했을는지 몰라요. 그래 이렇게 되는거로구나 이걸 알았어요.


<성인(聖人) 조상도 없고, 3백년 역사도 못되는 나라에게 선진국 소리를 한다>


  그런데 여러분들한테도 왜 “그걸 하십쇼, 했으면 좋겠소.” 하는 것이 조선서 학생들이, 왜 조선사람이 4천년 지금.. 지금 말로 4천년 역사라고 합디다. 개천 4천3백년이라고 해서 4천년 역사라고, 2만년 3만년 되도 이건 쳐지(인정하지) 말고 말이야. 4천년이라도 역사 가진 사람이 3백년 역사도 못되는 사람들한테 선진국 선진국 하니까. 그 우리가 머리가 모자라서 그러는거 아닙니까? 우리가 그 사람들보담 머리 나으면 그 사람들이 우리더러 선진국이라고 할거 아니예요? 미국 사람이 3백년 전에 들어갈적에 다 그 사람들이 선진국으로 들어갔나요? 살 수 없으니까 농사지으러.. 공으로(공짜로) 농사지을 자리니까 그냥 가서 이민 간 사람들이지, 이민 가서 농사 못 짓고서 쩔쩔매고 죽네 사네 몇번해.. 몇번하고 거기 이제 검둥이.. 검은 사람들(인디언) 토지 다 뺏아가지고서 부자된 사람 아닙니까? 그런데 그러나마나 그 사람들한테 여기선 안그러시나 몰라도 서울서 보면 학자님들이 선진국에서 어쨌단 소리 예사 거침없이 쓰더만요.

  그래 3백년 전에 이민으로 들어가서 쩔쩔매고 이러던 그 사람들이 선진국인가요? 4천년 5천년 만년 가깝게 문명한 조상들 가지고.. 성인 할아버지들 가지고 있던 사람이 선진국인가요? 그 남부끄럽지도 않은지 선진국 소리 예사해요.



<요즘 사람들은 조상을 가르치기 전에 영어부터 가르치려고 든다>

33:11

  그래 우리도 이 공부들을 해서 박사님이 많이 나고 노벨상이 여기서 자꾸.. 자꾸 터지고 그래보세요. 그래보면 우리 어려서 애들.. 여기 이 2천만 인구여 그때는, 6천만이 아니라 2천만 인구라고 했습니다 ○○○. 2천만 인구에 요렇게 쓴자(알파벳) 안 사람이 몇 안됐습니다. 서양사람 그저 심부름 하던 사람들이나 이거 이거 A B C 찾았지 하나도 그 찾은 사람 없었어요. 그래도 그때도 헐거 다했어요.

  헌데 지금은, 몰라 여기서들은 안그러시나 모르지만, 어린애들 요것만한거 말 겨우 ‘하나 둘’하고 ‘엄마’ 뭣하고 이렇게 알라면 그림 같은거 이렇게 내 놓고선 “이거 서양말로 뭣이다, 그림 이게 아무개다, 너 얼.. 알어? 하나 둘” 해서 그림 잡지책에 있는 그림 나오면 요개 아무개 아무개 요렇게 하는데, 고 네살 다섯 살 먹은것이 왜 기억이 그렇게 좋읍니까? 책 놓고 “이게 누구?” 하면 다 왼단 말이여.

  자기 아버지나 자기 할아버지나 곧.. 자기 조상에 누가 있다고 해서 어린애를 가르치는게 옳지, 잡지책에 저저 배우나 뭐 이런거 나온거 애들한테 그렇게 갖다 가르치는 것이 그 영자(영어)로 가르치는게 보통들입니다. 그 사람들 선진국이니까 그 선진국 바라고 그러는거여.


  우리나라에서.. 우리나라에서 다 이렇게 공부들을 하셔가지고 노인들은 몰라, 노인들은 거까정 가기가 힘들거지만 젊은 사람들은 투철한 발명이, 왜 노벨상 그쪽에서만 노벨상이 나와? 여기서 한국서도 상좀 줘가지고 자꾸 발표가 자꾸 나면은, 저렇게 저 한글로 쓴 ‘안씨’하면 안씨, 안 누구하는 이렇게 쓴거 서양 사람도 그걸 모르면 안돼. ‘가’자도 모르면 안되니까 ‘가’자 배우고 ‘안’자 배울라고 애써요. 이건 우리나라 머리가 부족하니까 후진.. 저희들 말로 후진족들이라고 해가지고선 깔본단 말이야.

  그러니까 우리도 선진해서 선진.. 앞서고 조상들 허시던거 다시 좀 밝히자는 생각으로 “이거 좀 하셨으면 좋겠소.” 한거지, 여기서 이거해서 부자 되는거고 뭐 하늘이 그냥 타고 올라가고 바닷속으로 들어가고 하는거 아니예요. 머리가 좋아져요. 허시면 몸이 건강해지는거, 머리만 좋아지면 거기 여러가지가 다 나와요.



<한계에 도달한 서양문명을 해결하고자 동양철학을 연구하는 서양인>

36:21

  지금 우리나라에서는 자처해서 지금 저쪽을 선진국이라고 야단들을 하는데, 서양 사람들은.. 서양에서 미국 사람들은, 미국 사람 여기 접촉하시는 이, 몇분이나 접촉들 하시는지 몰라도 내가 서울간지가 지금 스물다섯해입니다. 스물다섯해인데 간지 4년 되던 해부텀 미국서 보스턴 대학 뭐 어디 어디 해가지고 4차원 연구회가 있어요. 4차원 연구회에서 동양철학 연구합니다.

  미국이.. 미국이 최고 과일 다 열렸답니다. 발달 될대로 최고 발달 될대로 다 되고 지금은 뒤로 후퇴하는 도리밖에 없는데, 우리가 아닙니다 저희들이 그럽니다. 이거 동양철학 아니면 구제 못한다 이거야. 동양철학 아니면 구제 못한다고 해서 저 곤륜산에도 가고 인도도 가고 사방 동양철학 있는데를 사방 댕겨도 (입) 딱 다물지 얘기를 않는데요. 인도 가서도 인도 그 요가성(聖)한테 뭐라고 하면 요가 자기 제자만 보내주고 자기는 안간답니다. 저기도(중국도) 꼭대기 곤륜산에도 가보면 안다는 자는 그뜩한데 “10년 쭈그리고 앉아라, 뭐 9년을 앉아라, 앉아 해보면 된다.”고 이러지 확실한 얘기를 안한다는거야. 작년까정 나한테 댕겨간 것이 아홉명 댕겨갔어요 미국서, 학자라고 하는것들.

  거 저저 뭐라고들 끄적거리는지 난 영자 모릅니다. 어디 박사 나중에들 물어보니까 어디 박사, 어디 박사, 박사 몇씩 따가지고서 온 녀석들이 와가지고선 이 소리를 무슨 소리를 들었는지 모르지만 와서 거기 대해서 얘기를 자꾸 해요. “그건 너희가 할 일이지 우리가 어떻게 아느냐? 미국 일은 너희가 해야지 동양에서 알지 못한다. 너흰 선진국 아니냐? 선진국인데 실컷 잘해먹어라.” 그게 아니라 최고 절정에 가가지고 사실은 뒤로 오지, 앞으로 못나간대.



<남북통일은 사람 안죽고 잘될꺼니까 걱정마.>

38:55

  그래 지가 거기 저 《단》이라는 책에다가 뭘 얘기를 하다가 보니까, 백두산족의 장래니 뭐니 그런 얘기를 조금 했습니다. 했는데, 백두산족이 요번 갑자년(甲子年:1984년).. 갑자년이 강태공이 은나라를 망하고 3천년이여. 주나라 무왕(武王)이 등극한지 꼭 3천년이여. 3천년이 되는데, 3천년은 교환조건이예요. 그때 그 조상들이 교환조건이 백두산족이 3천년 쇠운(衰運:운이 기움) 좀 되고, 3천년 뒤서부텀은 다시 회운(回運:운이 돌아옴)한다는 것이 요 갑자년부텀 시작입니다. 우리들이 세계에 저 중국하고 우리하고 이렇게만 하는게 아니여, 세계 전체에 황백전환이여. 백인종이 전 세계를 지금 쥐락펴락 하는데 황백전환기 나는데 황인종이 백인종이(의) 그 자리에 위에 올라서서 이 밑에 이렇게 놓고.. 몰라 요번에 한 3천년 좀 더하지 않을라나, 한 5천년 하지 않을라나. 이것이 우리 앞에 있어.

  “너 어떻게 아느냐?” 이런 소리를 가끔 해요. “너 3천년이 앞으로 있을지 5천년이 있을지 어떻게 아느냐?” 이런 소리를 하는데, “그거는 말을 않는게 아니라 있기는 확실히 있는걸 없다고 할 필요는 없다. 당신네들도 그걸 보면 알것이다. 하늘은 거짓말하는 법이 없다.”

  남북통일에 지금 별 소리를 다하고.. 별 소리들을 다하지만, 남북통일에 6.25 사변때는 저희들이 아주 큰 횡액(橫厄:뜻밖에 닥쳐오는 불행)을 했지만, 요번에는.. 요번엔 남북통일은 힘 안들이고.. 큰 힘 안들이고 될거예요, 여러해 안가서 돼요. 나 저 통일원에도 그런 소리를 하니까 나더러 “통일하는 법안이 뭐냐?”고, “나더러 법안 물을꺼 없고 당신네들은 통일원이니까 통일안은 당신네들이 연구할 일이고, 남북통일은 사람 안죽고 잘될꺼니까 걱정마. 내 자꾸 그 소리를 해요.



<미국에 진 빚을 없애기 위해 모택동에게 군대를 넘겨주고 대만으로 간 장개석>1)

41:52

  이상하게 되는것이 중국이.. 중공이 공산이라고들 다 해요. 나 첫번부텀 아니라니까 곧이 안들어요. 이북과 똑같은 공산으로들 알고 공산 공산 하는데, 중공은 장개석[蔣介石,1887~1975]이하고 모택동[毛澤東,1893~1976]이가 한 선생 제자여. 한 선생 제자에 모택동이가 나이가 적고 장개석이가 나이가 많은데, 모택동이가 조금 낫고.. 이 공부처가 좀 위고 장개석이가 조금 아래인데. 둘이.. 둘이 교환조건이 있습니다. 장개석이 사는 곳이면 장개석이가 팔로군(八路軍)2) 십구로군(十九路軍)3)이라고 아주 그 강병(强兵).. 중국에 강병들 그저 공산당 강병들이 있지 않았어요? 그것들이 한참 야단할적에 장개석이가


  “십구로군 팔로군이라는건 내가 두달만이면 평정 다 시키겠소.”


이렇게 대니까 일본놈.. 일본 사람들 그 뭐지 대판조일신문 뒤에 좌우조라고 하는데서 갖다 평을 하는데 만리장성에.. 이래가지고 한쪽을 전부 다 해가지고,


  “당장 지(장개석)가 어떻게 하지도 못하는 자식이 건방지게 십구로군 그 강한 병(兵).. 신규군 군대로 강한 군대를 두달만에 평정을 한다고 건방진 소리한다.”


고 딱딱 때렸어요. 일본서 좌우조라는게 일본 관료.. 관료들입니다. 했는데, 두달만에 깨끗이 평정했어요. 그런데 그렇게.. 그렇게 강하다는 십구로군 팔로군을 가서 채악(蔡锷)4)?이 뭣이 뭣이 해가지고 그 강한 군단을 장개석이 직계군이 들어가서 다 때리는데 두달만에 깨끗하게 그냥 평정을 했어요.

  그렇게 하던 그 사람이, 장개석이 쫓겨날때 어떻게 한줄 아십니까? 일백오십칠 장령(將領:장군)이여. 자기 부하에 사단 이런거 군단이니 사단이니 하는게 일백쉬흔일곱개.. 쉬흔일곱개 자기 부하 장성(將星)들인데, 모택동이하고(한테) 지는데 한구(漢口)5)를 하루만에 뺐겼습니다. 모택동이하고 싸우는데 한구를 하루만에 뺐겼다니까. 아무래기로 한구같이 4백만 5백만 되는놈의 인구에서 하루 싸우면 그냥 뺐겨요? 장개석이처럼 강하던 군대가 모택동이 군대한테 그냥 그냥 후퇴를 해버려?

  이건 손자병법 읽는 사람들은 별소리를 다해. “뭐 그거 저 뭣이가 모택동이가 병법에 익어 그렇다.”고, 그거 아니예요. 미국이.. 미국한테 장개석이가 천억달러를 빚을 졌어요. 뭐 뭣뭣 전부 좀 맨드느라고 천억달러를 빚을 졌어. 이거를 갚아.. 갚을라면 중국의 큼직큼직한 도시는 전부가 중국.. 저 미국 사람이 물건 파는 자리밖에 못돼. 장개석이가 중국의 대통령 그 자리가 대단해? 모택동이 둘이 (손뼉을 치시며) 이렇게 놓고선,


  “밀어라! 밀면 나 내빼마.”


  거 그래가지고 슬금슬금 슬금슬금 다 내빼는데 일백오십칠 장령에.. 가 이제 조사해보시면 알아요. 일백오십칠 장령에 이십 장령만 내려왔어요, 이십 장령. 일백서른일곱 장령은 그냥 모택동이한테 줘버렸어요. 그래서 그 일백오십칠 장령이 이십 장령만 여기 떼놓고선 그 나머지를 다 줬는데, 그러면 이 사람들을 인민군 여기 같으면 반대파니까 장령이면 모가지 다 쓰고 총살 다 했을거 아니예요? 이건 그대로 그 자리, 호남성이면 호남성 군사위원장! 사천성이면 사천성 군사위원장 다 그 자리 줬어요.

  그게 싸움에 진건가요? 중국 사람이라는건 본디 그게, 우리들 모양으로 홑겹이 아니고 두겹.. 두겹인 분들이여. 미국놈 골리느라고, 그러니 이걸 보고선 한구를 하루만에 뺏기는걸 보고선 미국서 대주기를......(웃음) 



1) 장개석·모택동 밀약설(密約說)에 관한 봉우선생님의 독특한 견해는 최근 그것을 뒷받침하는 참신한 사료가 발견되었는데, 퓰리처상을 수상한 미국 최고의 저널리스트 데이비드 핼버스탬(David Halberstam: 1934-2007)의 마지막 유작인 《콜디스트 윈터(The Coldest Winter)--부제:한국전쟁의 감추어진 역사, 2009, 살림-》라는 책이 그것이다. 이 자료는 미국인 저널리스트 역사가가 미국인의 관점에서 다룬 6.25전쟁의 숨겨진 배후역사를 추적하며 돌출된 것들이라 더욱 그 사료적 신빙가치가 높다고 보겠다. 연구소에는 『봉우사상을 찾아서(3) - 장개석·모택동 밀약설과 최근사료』을 통해 유고집 <봉우일기(鳳宇日記)>2권 197쪽, [장개석이 대총통으로 4선되었다는 소식을 듣고(1969년 글)]에서 인용한 대목과 <콜디스트 윈터>에서 인용한 대목들로 봉우선생님의 탁월한 혜안을 재조명한 글을 기고한 바 있다.

<<『봉우사상을 찾아서(3) - 장개석·모택동 밀약설과 최근사료』 보기>>

2) 정식명칭은 ‘국민혁명군 제8로군’이며, 1927년 난창[南昌] 폭동 때는 홍군(紅軍)으로 불렸다. 제2차 국공합작(國共合作) 후에 국민혁명군 제팔로군으로 개칭하고 신사군(新四軍)과 함께 항일전의 최전선을 담당한 부대이다. 1947년에 인민해방군으로 다시 명칭을 바꾸었다. 

3) 북벌 후 진명추[陳銘樞] ·장광내[蔣光鼐] ·채연개[菜延鍇] 등을 주축으로 하는 광동[廣東] 출신 장교들에 의해 편성되었다. 제1차 상해사변 때 일본군과의 충돌을 회피하려는 장개석[蔣介石]의 의도에 반하여 상해의 북정거장(北停車場) 기타 지역에서 일본군과 충돌하고 그 후 1개월간 채연개 총지휘 아래 격전을 거듭하여 항일 영웅으로 이름을 떨쳤다. 그 후 복건[福建] 인민혁명정부에 참가했으나 장개석군에 괴멸되었고 1934년 1월 칠로군(七路軍)으로 개편되어 하남성[河南省]에 이주(移駐)한 후로는 십구로군의 명칭도 사라졌다. 

4) 채악(1882-1916): 호남성 보경(현재의 소양시) 사람이다. 남긴 유고가 <채송포집>으로 엮어졌다. 채악은 일찍이 신해혁명에 동조하였으며 원세개가 내세운 홍헌군주제를 반대하여 전쟁을 일으켰다. 중화민국 초기의 뛰어난 군사지도자이다. 

5) 중국 양자강 하류의 대도시. 지금의 무한(武漢). 



<장개석과 모택동의 스승인 임삼(林森)은 청천백일만지홍기(靑天白日滿地紅)에 이미 두 제자의 행로를 암시했다>

47:22

  그래 이것을 우리들.. 우리들 먼저 선배들은 장개석이 모택동이 둘이 저거 꿍꿍이심(心) 하는걸 봐라. 왕정위(汪精衛)6)가.. 왕정위가 손일선[孫逸仙:손문孫文,1866~1925]이 부하에 왕정위, 호한민(胡漢民)7)이, 장개석이 셋인데, 그 좌우.. 좌우에 손일선이 밑에서 셋이 이렇게 맞붙었던건데, 호한민이 죽었고, 왕정위가 일본하고 저 장개석하고 싸울적에 일본놈 편들지 않았어요? 유신정부라고 해가지고 떡 해가지고 여기 와서 유신정부 주석으로 나오지 않았나요? 일본놈들이 신문에다가 뭐라고 내고 자꾸 하는데, 중국놈처럼 음흉한 놈들이 그 둘이 그렇게 친한.. 형제간처럼 친하고 손일선이 밑에서 놀던 사람들이 일본 돕는다는게 일본 정객이 그걸 받아들인다고 뭐 뭐 개소리 쇠소리 이만하게 썼어요. 그러니까 일본 사람이 총으로 쏘아 죽이지 않았어요? 왕정위.

  그래도 이것이 저희는 다 얘기가 된거여. 임삼(林森)8)이라는 사람이 장개석이 선생이요, 모택동이 선생인데. 임삼이 ‘수풀 림(林)’자하고 수풀.. 나무목 셋한(森)자 그 오홍기(五紅旗)지 오홍.. 그 사람인데, 그게 중국(중화민국) 국기를 맨들어 낸 사람이예요. 중국 국기가 뭡니까? 귀탱이에다 요렇게 요렇게 똥그랗게 지구 그렸죠? 청천백일만지홍(靑天白日滿地紅)9)이여. 청천백일(靑天白日) 귀퉁이 있구선 만지(滿地)가 다 이렇게 뻘건거여. 장개석이 끄트머리는 청천백일만지홍, 청천백일 한거는 요거 장개석이지. 장개석인 요건 어디로 가는고 하니 대만으로 가서 기약하고, 중국 전체 땅은 만.. 뻘겋게 공산으로 그래 된다. 공산이 아니여, 이건 손일선이 삼민주의(三民主義)10) 공산입니다.

  중국 갔다온 사람한테 물어보십시오. 중국 갔다온 사람한테 지금이라도 중공 갔다온 사람한테 물어보시면 알아요. 공산 국가에서 국채 쓰는법 있습니까? 공산국가에서 백성들한테 국채 채권 줘가지고 국채 써요? 그냥 뺐어가지. 그거 지금 이제 조선이 중공하고 손을 잡고 자꾸 뭣하는건 잘하는 거예요. 그 잘되는 겁니다.



6) 중국 정치인, 1883~1944. 그는 중국 국민당 좌파의 일원으로 손문과 친밀한 관계에 있었으며 장개석과 대립하는 라이벌로 유명하며 중일전쟁 발발 이후에 친일파로 변절하여 남경(南京)에 친일 괴뢰정권을 세웠다. 중국의 대표적인 "매국노"(漢奸)로 불린다. 

7) 중국의 정치가, 1879~1936. 손문이 지도하는 도쿄에서의 중국혁명동맹회 창립에 참가하였으며 손문이 북상(北上)한 후 대원수(大元帥)의 직권을 대행하였다. 1927년 장개석과 함께 공산당 탄압의 4·12쿠데타를 발동, 장개석과 쌍벽을 이루는 국민당의 중진이었으나, 의견충돌로 장개석에 의해 남경에 감금당하였다. 

8) 중국의 정치가, 1868~1943. 총통부 고등고문, 헌법회의 의장, 중화혁명당 미주 총지부장, 푸젠성 성장, 국민정부 주석 등을 지냈고 일제강점기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지원하였다.

9) 중화민국의 국기, '청천백일만지홍기(靑天白日滿地紅旗)'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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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손문이 중국 혁명, 즉 중국의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의 방향을 가리켰던 이론. 삼민(三民)이란 민족(民族)ㆍ민권(民權)ㆍ민생(民生)을 의미하는데, 자유ㆍ평등ㆍ박애의 정신을 포함하면서 민족적으로도 정치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평등을 주장하는 '국민혁명'의 이론이다. 1905년에 손문이 처음 주장했던 이후 이론이 더욱 심화되고 다듬어져 1924년에 신(新)삼민주의가 제창되었는데, 이것은 민족주의의 측면에서는 제국주의에 반대하는 '민족의 자유ㆍ평등'을, 민권의 측면에서는 보통선거제, 민생의 측면에서는 '토지를 농민에게 돌려주자'고 하는 토지 혁명, '자본의 절제'를 주장하면서, 자본주의 폐해를 억제할 것을 요구하였다. 세계주의는 아니지만 소련과의 제휴를 주장하였으며 특히 국민당을 개조하고 중국 공산당과의 통일전선의 사상을 제시하였다. 이 방침은 중국 공산당의 신민주주의 혁명의 강령으로 채택되었다.



<말도 안되는 통일 방안을 가지고 와서 헛소리를 했던 지리산 도인의 제자>

50:41

  그래가지고 우리는 남의 비결을 믿는것도 아니고 다른거 다 고만두고, 우리가 잘해가지고 다 제갈량이가 되고 다 강태공이가 되라는건 아니예요. 여러분들이 다 ‘나’라는걸 알게 되면은 서로 이거 단결이 됩니다. 서로 단결이 되고, 서로 살아갈거를 서로 남한테 의지하지 않고 서로 알아가며 남북통일이라는게 그리 멀지 않아서 바로 되니까 남북통일이 되면, 남북통일에 통일방안이 뭐냐? 하면 그게 이제 또 문제죠.

  뭐 별소리를 다 하는 사람이 있더문요. 통일 방안이라고 하는데, 여 어떤 도인 한분이 지리산 도인이라더먼. 도인 한분이 이만하게 써가지고선.. 써놓은게 있어요. ‘남북통일 하는데는 식은죽 ○○○○보다 수월하다.’ “그래 무얼가지고 하느냐?” 하니까 거기 쓴것이 그것입니다.

  ‘남북이 같이 회담을 해가지고선 유엔에 가입을 해가지고, 유엔서.. 여러나라에서 평화통일 군을 조직해. 평화통일군을 직접 조직해서 여러나라에서 가운데다 보내가지고 남북을 무장해제를 시키면 대번 통일 됩니다.’ 그러니 도인.. 도인 제자라고 왔어요. 도인 제자도 자기도 꽤 90 늙은인데 도인.. 반 도인은 된 사람이여.


  “당신 침 맞아봤소?” 하니까

  “아 침은 미친놈 침 주는거여.. (일동웃음) 미친놈 침 주는거여.”

  “아니 남쪽이나 북쪽에서 유엔군이 와서 무장해제해라 하면, ‘아 다 우리 다 통일하기 위해서 해줘야 한다’고 해제할 놈이 어떤놈이 있어? 그런 도인 노릇하고..”

  “아 그게 아니라, 그 도인이 하라고 하면 꼼짝 못하고 한다.”고

  “그런다면 미친 소리다.”


  그래 저희는 기계는 기계로 상대해야 되고 도덕은 도덕으로 상대해야 됩니다. 그러나 싸워서 이길라고는 말고, 싸움 없이 이기면 좋죠. 저 사람도 싸워서 수판이 맞지 않을줄 알면 안싸웁니다.



<동네 사람의 반대를 무릅쓰고 상신초등학교를 설립하시다>

53:43

  그래 지금 제일 바라는 것은 이런 이 저 하계 수련회, 하루 이틀 뫼여서 뭐가 당장 됩니까마는, 이런 의사를 가지시고 집회만 해주는 것만이래도 고마워요. 고마운게, 이게 나라와 내 하나만 위하는게 아니고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허시는 일들이니까 고맙습니다. 지가 이 자리가 이 동네 살면서 처음 이 학교(상신초등학교11))를 지던... 여기서 10리 밖인데 쪼그만 애들 눈이 오든지 비가 오든지 하면 쪼그만 애들 6킬로니까 6킬로를 다닐라면 못댕겨요. 이러니까 여기다 학교를 짓는다니까 학교를 반대를 하고, 이 동네 제일 부자로 있는 이.. 권리 있는 이가 동네 술을 몇병이나 내서 죽 모아 놓고서


  “권태훈이가 학교를 짓는다는데 학교를 지으면 당신네들 90살까정 지계 져야 돼. 학교댕기는 놈들 한놈도 지계 지는놈 없어. 학교 반대 해라.”


  그런데 그 반대나기 전에 난 먼저 ○○에 도장을 다 받았습니다. 먼저 정초에 왜 저 뭣들 그저 농악대.. 농악대 돌아댕기지 않습니까? 농악대들 돌아댕기는데, 농악대 댕기는데다 술동이나 단단히 냈어요. 내면서 죽 돌아댕기면서


  “자 학교를 맨들고, 우리들이 자식이래도 공부를 잘해야 되니까, 우리 찬성해서.. 도장 찍어서 이거 짓도록 합시다. 당신네에게 학교 짓는데 돈 일전 한푼 달라지 않소 말이야. 돈은 어서 나오고, 어서 나오든지 그건 걱정 말고, 못내면 나라도 낼테니 걱정마시오.”


  이래놓고 하니까.. 한푼도 안든다니까 다 도장 찍었어. 그 미리 도장을 다 받아놨습니다. 학교 찬성하는 도장을 다 받아놨는데, 부자가 술맥여가면서 이놈들 뭣하니까,


  “아 권태훈이한테 속았다.”고 이 늙은이들이 그 “난 빠질라고..”


  “그런 소리말어. 이 서류가 다 들어갔어.”


그러고선 동네 벌채(伐採)가 잘 안나는데 벌채하러 가서, 도에 가 떼쓰고, 군에 가 떼쓰고 해서 벌채 해가지고 심었는데, 그것이 그래도 이게 해방 직후니까 지금까정 그래도 버티고 본교로 돼서, 여기서도 그래 서울대학에도 나온 애들이 여럿이고 꽤 많이 나왔습니다. 일을 허면 허는거예요.



11) 상신초등학교 : 공주시 반포면 상신리에 위치. 1945년 해방과 함께 고등 교육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던 봉우 선생님은 상신에 정식으로 학교를 설립하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을 하셨다고 한다. 1947년에 두칸짜리 목조 건물로 임시 개교를 하였고, 학교 설립시엔 사재를 들여 학교에 필요한 각종 기자재를 기증하셨고, 이후에도 계속 학교 재정을 지원하셨다. 설립시 학교 부지는 마을에서 공동으로 내놨고 건물은 벌채업자 이수만씨에게 학교건물을 지어주는 조건으로 마을 주변 산의 벌채권을 주어 그 수익으로 지었다고 한다. 임시개교 이후엔 공주 교육청에 분교 인허가를 도맡아 하셨으며 이런 노력에 힘입어 1952년 4월1일 반포공립국민학교 상신분교가 정식으로 설립허가 되고 그 해 1회 졸업생을 배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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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반포공립국민학교상신분교장제1회졸업기념 사진 >                < 지금은 학생수 감소으로 폐교된 상신초등학교 전경 >


<상신초등학교 관련 글 보기(봉우선생님 송덕비 유래)>



<전부 반대하던 반포중학교 설립을 사방으로 노력해서 허가내심>

56:57

  여기 이 중학교(반포중학교12))도 지을라고 할 때 전부 반대했습니다. 반대하는데 뭐라고 하는지 아십니까? 중학이 도시에 있는 중학에도 중학에서 졸업을 잘해가지고 고등학교로 가고 대학에 가자면 힘드는데, 이 촌이면 선생 ○ 이런거 다 보내야 되니까 공부 못한단 말이야. 거 그런소리.. 그럴수도 있어요.


  “여 대전이 가깝고 공주가 가까우니까 유성도 가깝고 그리 다 보내면 되지 뭣하러 중학교를 짓느냐? 허가도 안날거다.”


  그냥 허가를 낼라니까 허가 안내줘요. 황산덕(黃山德)13)이 문교장관(1976.12~1977.12)입니다.


  “어쩔라우? 내가 고향에 이런 일이 있는데 하나 이거 찍어줄라우? 안찍어줄라우?” 떼를 썼어요.


  “아 도(道)에서만 올라오면 도에서만 오르면 찍어주마.” 그래 “내가 그냥 덮어놓고는 못하고 도에서 문정과(文政課:옛 교육행정부서)에서 허가 오면.. 오르면 찍어준다.”


  문정과에 오니까.. 문정과에는 다 얼굴 아는게 내가 그 도 위원으로 있었으니까.. 도 교육위원으로 있으니 다 알아요. 그 허라니까


  “아 그 힘드는거 뺑뺑 돌아서 학교가 중학교가 다니는데 거기다 어떻게 낼라고 그래?”


  “잔소리 말고 문정 과장이 이거 이 서류에 도장 좀 못 찍어줘?”


하니까 찍어주더구만요. 그 찍은놈 그놈 가지고서 갖다가 부치고선 여기서 ○○. 여기서는 내 자식 시켰어, 여기서 “너희들이 주의를 해라.” 하고, 아 그래 허가 냈습니다.



12) 반포중학교 : 충청남도 공주시 반포면 봉곡리에 있는 공립중학교. 1977년 12월 30일 반포중학교 9학급 설립인가를 받고 1978년 3월 11일 개교하였다. 봉우선생님이 상신초등학교 설립만 주도하신 것은 아니다. 여러곳에 장학 사업을 하신 증언이 있는데 공주에 있는 반포중학교도 그중 하나다. 특히 반포 중학교는 학교설립시 상당한 재정 지원과 노력을 하신듯 하고 얼마전까지만 해도 그점을 기려 학교 정문에 동판으로 봉우선생님의 성함이 새겨져 있었다. 하지만 작년(2011)에 학교측에서 정문 수리를 핑계로 동판이 현재 제거된 상태이다. 학교측에 항의한 결과 복원하겠다는 답변을 들었는데 계속 지켜봐야 될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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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반포중학교 정문 >                                         < 동판에 "증 권태훈 1981.2.12"이라고 새겨져 있다 >


<반포중학교 관련 글 보기(봉우선생님 송덕비 유래)>


13) 법학자·행정가, 1917∼1989. 호는 석우(石隅), 만년에는 취현(翠玄). 평안남도 양덕(陽德) 출생. 평양고등보통학교를 마치고 경성제국대학 예과, 법문학부 법학과에 입학하여 1941년 졸업하였다. 1943년 경상북도 도청 근무. 광복 후 미군정청 근무, 1948년부터 고려대, 서울대 법과대학에서 강의 하였다. 1960년 서울대에서 국내 최초 법학박사학위를 받음. 1966년 성균관대 법정대학장, 1974년 성균관대 총장. 같은해 법무부장관에 임명됨. 1976년 12월 문교부장관으로 전임되어 1977년 12월까지 재직. 퇴임후 성균관대와 단국대에서 강의와 저술활동을 하며 한국법철학회 회장, 학술원 회원, 한국형사법학회 회장을 역임하였다.



<노인도 호흡을 길게만 하면 잔병이 없어지고, 소담 잘되고, 눈이 밝아진다.>

58:46

  이 일이라는게 허기 달렸고, 그래 이제 여러분들도 바라는 것이 노인 되신 이는 이게 ‘호흡하는데는 젊을때 보통하는게 좋다’ 이러지만. 헌데, 호흡에 효력을 크게 볼라면 젊으신 이가 되지만 노인도 안하시는거 보담은 나아요. 몸에 잔병 없어지고, 소담(消痰) 잘되고, 눈 밝아지고.


  지가 올해 여든아홉인데 병원엘 요번에 들어갔는데.. 저 몸이 아팠을적에 들어가니까 피가 많이 나갔다니까, 아 안력(眼力) 나빠진다고 그래요. 안력이 뭐 보지 못한다고.


  “당신.. 당신 의학은 그렇지만, 내 의학은 안그래. 내 눈은 밝아져, 밝은 눈이여.” 하니까


  “여든아홉에 무슨 밝으면 얼마나 밝으냐.”고,


  “잔소리 말어. 당신 영수증...”


뭣이 저 달라는 진찰한거 값 달라는 영수증 있어요. 거기 글자가 잘디잘게 있습니다. 신문 글자보다 더 잘게 있어, 다 작어. 가져와보니까 다 본단 말이야.


  “아니 그전에 본걸 외는거 아니냐?”고 나더러 그래.(일동 웃음)


  “외든지 말든지 당신들이.. 당신 의학은 늙은이 눈 밝아지는걸 몰라 그래. 내가 참 잘못해서 오식(誤食:잘못 먹음)해서 극약을 먹었지만 눈이 내가 어두워지는 사람 아니여.”


  근데 지금 우리도 노인도 기운이 나집니다, 피로가 덜오고, 호흡을 길게만 하시면. 그리고 이제 머리가 좋아지는건 좀 젊으신 이가 잘돼요. 어디 40 안쪽.. 40 안쪽 되신 이들이 잘되지. 40 넘은 이는 안된다는게 아닙니다. 이 호흡에 성공 제일 잘됐다는 이가 여순양(呂純陽)인데.. 여순양인데, 환갑 지나서 내외가 당신 마누라하고 아들 낳고 딸 낳고 다했어요. 벼슬하고 하다가 환갑 됐을때 환갑 지내고선 산에 들어가 공부 시작해서 둘이 다 신선 됐어요. 그런데 그때는 환갑 지내서 할적에 눈이 어두웠을거 아니예요? 헌데 눈 밝고 기운 낫고 내외간에 아들하고 딸낳고 다했는데 공부 들어가선 따로 있었지.

  공부한걸 보면 60 지난 이도 되긴 되는데 그건 예외여. 예외고 우리가 해보니까.. 우리가 해보니까 길던 호흡도 늙으니까 좀 짧아져요. 길던 호흡도 늙으니까 짧아지고, 버티는거 힘이 좀 약해져요. 지금도 보통은 됩니다. 90 늙은이지만 지금도 보통은 돼요. 그냥 폐식 말고 순조로이 조식할라면 젊은 사람들한테 지진 않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