鳳宇 스승님의 思想과 生活

金 珖 默*

봉우 권태훈 스승님께서는 지금 이 시대가 물질문명의 극치점에 와 있어서 정신도덕을 찾아 볼 수 없는 흑암중에 방황하고 있으며 이것은 또 날이 샐 새벽의 현상들이라 하였다. 그러니 대황조님께서 가르쳐주신 조식법을 연마해서 우리 고대문화를 되살리고 나가서 정신 도덕으로 물질문명과 합일시켜 우주일가주의(宇宙一家主義)로 세계평화를 건설하고자 역설하였다.

이 역할을 다른 민족이 아닌 우리 민족부터 대황조님의 홍익인간 이념을 실천해서 작게는 민족통일과 크게는 세계평화 멀리는 우주평화까지 실현시킬 책임과 의무가 우리 백두산족에게 있다는 것을 강조하신다. 시기는 과거도 미래도 아닌 지금 이 땅에 태어난 사람부터 시작해야 된다는 것이다.

현 물질문명 세계에서 정신문명과 물질문명이 합일되어 대립과 반목이 아닌 평화와 상호공존의 시대로 바뀌는 것을 황백전환기(黃白轉換期)라 하며 그 시기가 지금 도래하였다는 것이다. 황백전환기에 우리 백두산족이 시발과 주체가 되는 것을 白山運化라고 정의하였으며, 이 운이 은(殷)나라가 망하고 3000년만에 우리 백두산족에 다가오는 운이라 이 운을 맞이하고 준비하는데 일개인이 아닌 전 국민의 과반수 이상이 동참을 해야 한다고 하셨다.

이것이 봉우 권태훈 스승님이 많은 수필에서 똑 같은 말씀으로 되풀이 강조하신 개략적인 핵심 사상이 아닌가 한다. 더 세부적인 면은 각자의 전문가적 입장에서 논하여야 한다고 본다.
나는 실생활에서 접하면서 행동으로 실천하신 것을 학인(學人)의 입장에서 본대로 느낀대로 적어 보려고 한다. 전문 학인으로서 깊이있는 정신적인 것은 여기서는 논하지 않기로 한다. 깊이있는 정신세계를 알기 위해서는 본인이 직접 수련해서 체득해봐야 이해가 가는 부분이 많기 때문이다.

봉우 권태훈 스승님은 나이, 장소, 사람에 구별없이 항상 존대어를 사용하시었다. 내가 처음 봉우스승님을 뵈었을 때부터 돌아가시는 날까지 변함이 없으셨다. 그리고 제자들이 인사를 드리면 항상 맞인사를 하셨고 말년에 몸이 불편하셨을 때에는 몸이 불편해서 못 일어나서 미안하다고 꼭 하시었다.

이 행동들이 예의에서라기보다 생활 그 자체인 것 같았다. 언젠가 회원들간에 존칭문제로 토의가 있었는데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호칭도 중요하지만 그 호칭을 사용하는 사람의 마음자세가 중요하지 않은가 생각이 된다. 90세 스승님이 20대 제자에게 존대어를 사용하시는데 회원간 선후배간 더 나아가 일상생활의 대인관계에서 어떻게 행하여야 한다는 것은 불보듯 뻔한 이치가 아닌가 싶다. 나 자신부터 깊이 반성해 보아야겠다.

그리고 스승님은 평소 대화중 제 3자를 말할적에 그 자를 비난하는 것을 못 보았다. 질문을 해도 그 사람에게 욕이 되는 사항은 모른다고 일축하셨고 상대방에게 제 3자를 일방적으로 한쪽 면만을 말씀하시는 것을 안하셨다. 그렇다고 제 3자의 이야기를 안한 것은 아니라 정히 말씀하실 때에는 객관적 입장에서 공정하게 말씀하시려고 노력하셨다. 보통 사람은 어떠한가? 주관에 빠져서 공정성을 잃을 때가 많은 것 같다.

봉우 스승님은 금전에 관해서 철저하시다. 어떤 때는 저렇게까지 할 수 있을까 정도다. 봉우 스승님 말씀이 돈은 땀흘려서 벌으라고 하셨다. 돈을 버는데서는 보통 사람보다 더 열심히 버셨다. 90대 몸져눕기 전까지 돈을 버셨다. 그런데 돈을 쓰는 방법에서 일반인과 차이가 났다. 일반인은 내가 번 돈은 나의 생활에 주로 쓰는데 비해 봉우 스승님은 공적인 곳에 많이 사용 하였다.

일례로 계룡산 상신리에 오시면 항상 경로당에 술 사먹으라고 몇십만원씩 주시고 가시었다. 봉우 스승님의 나이보다 경로당 노인들이 전부 연하(年下)였다. 5-15세씩 나이들이 작았다. 마을 입구 개울에 있는 나무가 장마에 떠내려 간다고 그 보호벽 하라고 기부를 하시었는데 이런 행동이 의례적 행사가 아닌 생활 자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돈 이야기가 나왔으니 돈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친척이 사업에 실패해서 봉우 스승님이 빚을 갚아주느라 적금을 해약해서 얼마를 썼네 하시었다.

그것도 한두번의 실패가 아니었는데 매번 그 빚을 갚느라 모아 놓은 돈을 다 썼다고 하시었다. 그때 내심 궁금하였다. 우리들한테는 공부를 하면 투시가 되어서 앞일을 환히 볼 수 있다고 말씀하고서 봉우 스승님도 옛날 인천에서 수련할 적에 전후좌우로 다 보셨다 하셨는데, 친척분 사업의 성패를 왜 말씀 안해주셔서 그렇게 많은 돈을 낭비하시나 하고 의문이 있었으나 그 당시(85년)는 공부에 관한 질문 외에는 함부로 할 수가 없었다.

의문을 가지고 있던 중 어느땐가 이 의문에 질문할 분위기가 되어서 여쭈어 보았다. "왜 스승님 친척분 사업에 관해서 말씀해 주시지 않고 그냥 실패하게 두십니까?" 라고 질문을 하니 즉시 말씀을 않으시고 빙그레 웃으시면서 말씀하시기를 "그 돈을 못나가게 막으면 사람한테 해(害)가 와. 그래서 그냥 나가게 두는거야. 돈은 또 벌면 되잖아." 하시면서 "그 돈을 못나가게 막으면 사람 잃고 돈 잃어." 하시는 것이었다. 이때 문득 내 가슴속에 있던 의문이 또 하나 풀렸다.
우리 주변에 보면 마음씨 착하고 가난한 사람이 열심히 일하면서 안 먹고 허리띠 졸라 매가면서 재산을 모아서 이제 좀 풍족하고 먹고 살만하면 고생해서 번 돈 써보지도 못하고 죽는 사람을 많이 보아 왔다. 나쁜짓도 안하고 열심히 검소하게 살은 것 밖에 없는데 왜 저렇게 착하고 모범적인 사람이 고생만 하다 죽나. 그것도 나이가 많이 먹은것도 아닌데 무언가 세상이 불공평한 것 같았다.

어떤 이는 남에게 사기 치고 피해주면서 부정한 방법으로 돈을 벌어서 잘 쓰고 잘 먹고 잘 사는데 말이다. 착하면 복 받는다고 했는데 이것이 항상 의문이었다. 그런데 봉우 스승님의 이 말씀을 듣고 어려서부터 간직한 의문이 풀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