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언 48 최종은(87세, 한학자, 상신리거주)

나는 봉우선생의 부친이신 취음공(翠陰公)께 한학(漢學)을 배웠으므로 일찍부터 봉우선생님댁을 출입하였다.
하루는 -1930년대로 기억함- 그날도 취음선생께 시전(詩傳:사서삼경중의 시경)을 배우고 있는데, 어떤 선비행색의 나그네가 찾아왔다. 그는 벙어리였다. 그래서 붓으로 한무능ㄹ 써가며 자신의 의사를 밝히는 필담(筆談)으로  취음공과 대화를 나누었다. 그 자리에 마침 봉우선생님도 계셨고 나도 같이 한학을 배우는 다른 학생들과 이 광경을 보고 있었는데 필담 내용으로 보아 이 벙어리 선비의 한학수준이 상당히 높아보였다.
이때 가만히 옆에서 당신의 부친과 필담을 나누는 벙어리 선비를 보고 계시던 봉우선생님이 역시 붓으로 다음과 같은 글을 적었다.

"더불어 이야기함직한 사람에게 이야기를 않으면 사람을 잃고, 이야기해서는 안될 사람에게 이야기를 하면 말을 잃는다. 지혜있는 사람은 사람도 잃지않고 말도 잃지 않는다."

이글은 <논어(論語)> 제 15장 위령공편(衛靈公篇)에 나오는 공자님 말씀이다.
봉우선생님이 이 글을 벙어리 선비에게 써 보이자, 순간 그의 안색이 싹 변했다. 잠시 어색한 침묵이 흘렀는데 아니 이게 웬일인가! 이 벙어리가 말을 하는 것이었다.

자신은 서울사는 선비인데, 일제에 나라망하고 그 울분을 참을 길 없어 벙어리로 가장하고 온 나라를 방랑하며 마치 김삿갓처럼 농세(弄世:세상을 조롱함)하고 다니기를 몇 년째라 하였다. 얼마전 공주지방에 흘러들었다가 봉우선생님이 도학(道學)에 조예가 깊고, 그 부친의 문학과 인격이 고매하다는 소문을 듣고 이처럼 찾아왔다는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몇 년간 벙어리행세로 다니며 수많은 문사(文士), 학자님들과 필담을 나누었어도 오늘처럼 자신의 정체를 정곡으로 찌르는 사람을 만난 적이 없었다면서 봉우선생님께 아주 감복하는 것이었다.
그냥 자기의 정체를 알아보는 것도 놀라운데, <논어>의 인용글귀가 그야말로 자신의 심금(心琴)을 울려서 몇 년만에 처음으로 말문을 틔이게 했다고 감격해했다. 자기도 처음에는 억지로 말문을 닫았지만 계속 습관이 되니 진짜 벙어리가 된 것이었다.

이후 그 벙어리는 한번 말문을 트고 나더니 며칠을 선생님댁에 머물며 봉우선생님께 본격적으로 말을 걸었다.
뭣이 그리 긍금한게 많은지 수많은 질문을 해대며 한참 배우는 학생처럼 지내더니 나중에 떠나면서는 봉우선생님!하면서 자신보다 한 20세 아래의 사람에게 깍듯이 님자를 붙이는 것이었다. 이런 일이 있고나서 한동안 상신리 인근에서는 봉우선생님이 벙어리 말문을 틔워주었다는 소문이 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