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시화(시인)

약 20년전 심령과학에 관한 책들을 많이 번역 소개하여 한때 유명했던 심령연구가가 있었다. 그는 원래 소설가였는데, 심령과학에 몰두하다가 말년에는 사람들 전생을 봐준다는 예언가 노릇까지 하다가 몇 년전 타계했다.

소설 <단>이 나오고 나서의 일이었다. 그가 봉우 선생님댁을 방문하여 환담을 나누었는데, 마침 나도 그 자리에 함께하게 되었다. 평소에 그가 자칭 사람들의 과거, 미래, 현재를 투시한다는 심령전문가로 행세하는 것에 대해 의구심을 품고 있던 나는 그날도 역시 선생님앞에서 과장된 언행을 보이고 있는 그를 묵묵히 보고 있었다.

그는 지금부터 3000년전에 자신과 봉우 선생님이 함께 지냈다고 하며 봉우 선생님이 그당시 단군으로 계셨다는 식으로 얘기하였다. 봉우 선생이 삼천년전 단군이고 자신은 그옆에 같이 있었으니 자신의 존재도 한껏 부풀려 놓은 것이다. 그리고 한걸음 더 나아가 그때 일을 선생님은 다 아실 것이라고 넘겨짚는 것이었다. 이때 말없이 그의 주책없는 헛소리를 듣고 계시던 봉우 선생님이 태연히 한마디를 던져 놓으셨다.

"그럼, 자네 삼만년전의 우리 일들은 잘 기억하고 있나?"

이 말 한마디에 그동안 좌중을 휘저으며 자신의 투시력(?)을 설파하던 그는 그만 아무말도 못하고 내내 침묵을 지키고 말았다.
어리석은 이의 대포에는 대포로 응수해 주시던 봉우 선생의 말 한마디가 지금 생각해도 너무 재미나다.

* 엮은이 글   도를 추구하는 사람들 가운데에는 좀 허황한 사람들이 많다.  대개 그런 사람들은 남들보다 뛰어난 재능이나 명석한 두뇌의 소유자들인데, 약간의 정신적 경험이나 소득을 지니고 그것을 밖으로 과장하여 자신을 망령되이 높이려하는 잘못을 저지르곤 하는 것이 통례이다.  봉우선생님 주변에도 이런 사람들이 끊이지 않고 몰려들었는데, 선생님은 늘 넉넉한 인품으로 이들을 대해주셨고 감싸주었다.  그들이 원래의 자리로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편이셨다.

1952년에 계룡산 신도안에서 자칭 도인이자 예언가인 백무무(白無無)란 사람을 만나고 나서 쓰신 글의 일단을 보면 선생님의 마음이 짐작이 간다.

…… 백氏가 장담하기를 장래 성인이 별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다.  옛 성인은 당시의 성인이지 현재로 보면 유치하기 짝이 없다는 망언을 수차례나 반복하는 것이었다.  백氏는 재능이 있는 인물이나 그 덕량이 발현되지 않고 아무리 보아도 망자존대(妄自尊大)병이 과한 듯싶다.

즉 약간의 외유(外遊)로 방약무인(傍若無人)한 모습이 많이 보이지만 실질적으로 다음 세계를 운화(運化)하는 데는 별 소용이 없다.  그러나 이론만은 보통을 넘는다 하겠다.  이런 기괴한 이론을 주장하는 인물들이 자고로 없는 것은 아니나, 이 기괴한 행적을 벌이는 역량으로 공명정대한 이론을 연구하고 실행하여 자신이나 민족에게 유리한 사업을 하였으면 어떠한가.  아무리 생각하여도 유감천만이라고 본다.

우리나라에서 제일 귀한 것이인물인데 보통에서 초월한 재능을 지닌 인물들은 정도에서 탈원하여 방행(傍行 : 엉뚱한 짓을 함)하는 인사가 십중팔구이다.  이것이 우리민족이 아직 수난기를 벗어나지 못했다는 반증이기도 한 것이다.

민족은 말할 수 없는 도탄에서 사선을 방황하고 있는데 이것을 보고도 아무 감각이 없이 실질면에서 구출할 방책을 연구하지않고 역리(易理)나 기괴망측한 궤변으로 횡설수설하면 무엇이 민족에게 유리할 것인가.  아무리 보아도 한심한 일이다.  백무무씨의 언행을 살펴보건대 인품이나 포부나 또 명석한 두뇌등이 아무리 보아도 얻기힘든 기재(奇才)가 확실하나, 정경대도(正經大道)를 걷지 못하는 것같고 이것은 민족적으로 애석한 바라 붓을 들었을 뿐, 나 개인적으로 백씨와 대립하고자 해서가 아니다.

백산운화(白山運化)가 머지않은 장래에 있고 이 운화를 좌우할 인물이 아직 다 정해지지 않은 이 때에 백씨같은 능력있는 인물이 잘못 흐르는 것을 보고 아무 말도 안한다면 이는 민족애가 없는 것이다.
오로지 우리 민족을 위해서 한사람이라도 민족의 일꾼을 더 구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후일 군자들이 오늘날 내 심회를 알아주면 다행이겠다.
(1952년 11월 20일에 쓴 수필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