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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주의 대공전(大公轉)은 휴식함이 없고 우리의 심신(心身)도 이 공전(公轉)을 따라서 구르고 구른다. 일음일양(一陰一陽)의 도(道)는 변함이 없고, 우리는 그 가운데 생로병사(生老病死)의 궤도를 걷는다. 이 우주는 멸함이 없고 우리의 인류도 그와 같을 것이다.
    - 봉우 권태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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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류트족의 형성(The Peopling of the Aleutians)


- 알류트족은 지금도 조상들이 살아왔던 고향땅에서 살아가고 있다. 이들에 관한 유전학적 및 고고학적 정보들은 인류의 마지막이었지도 모르는 대이주 과정, 그리고 신비에 싸인 아메리카인의 형성과정을 어렴풋이 그려낼 수 있는 단서를 제공해주고 있다.




  알래스카주 알류샨 열도의 아닥 섬(Adak island) 


  이 화산 섬의 북쪽 끝자락에 있는 클램 라군(Clam Lagoon. 대합조개 환초호)은 환초로 둘러싸인 해안가로 사나운 파도가 휘몰아치는 베링해로부터 안전한 피난처가 되어왔다. 해달이 한가로이 헤엄을 치고, 북태평양 바다 쇠오리와 섬새들이 나무 한그루 없는 해안가에 둥지를 트는 곳이다. 약 7천년전 여기에 일단의 인간들이 노젓는 카약을 타고 와, 환초호와 먼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절벽위에 집을 짓고 살았다. 바다생활에 잘 적응해온 이 최초의 이주자들은 곧 풍부한 토산물들을 활용하기 시작했다. 해달, 새, 물개, 바다사자 등을 사냥해 잡아 먹었으며, 새의 날개뼈로 만든 낚시바늘로 대구, 쥐놀래미 등의 물고기를 잡아 먹었고, 심지어 수백 킬로 떨어져 있는 다른 섬에서 가져온 흑요석으로 도구를 만들어 썼다. 오래지 않아 더 작은 무리의 인간들이 아닥섬을 떠나 서쪽에 있는 더 많은 섬들로 이주해갔다.

  이 고대 알류트족은 최소한 9천년전에 이미 2천킬로에 달하는 이 세상에서 가장 긴 알류샨 열도를 탐험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이들은 수천년동안 이 섬들에서 살아왔기 때문에, 과학자들은 이 열도가 인류의 이주현상을 연구하기 위한 살아있는 실험실이라고 말하고 있다. 캔자스 대학의 유전학자 마이클 크로포드(Michael Crawford)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알류샨 열도보다 더 나은 모델은 없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2차세계대전 기간동안에 대부분의 알류트족 사람들이 조상대대로 살아온 터전을 떠나갔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하지만 오늘날 아닥 섬은 알류트족이 언제, 어떻게, 어떤 이유로 이곳에 모여 살게 되었는가를 탐구하는 중심지가 되었다. 오늘날 알류트족의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가계를 추적하여 최초로 섬에 이주한 자들을 알아낼 수 있게 되었고, 그래서 열도에서의 많은 연구를 지원하는 국립과학재단(National Science Foundation)의 극지 사회과학 프로그램(Arctic Social Science Program) 책임자인 안나 커툴라(Anna Kerttula de Echave)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알류트족은 저 깊은 과거의 시간속에서 불어오는 폭풍과도 같은 존재이다. 지구상에서 인류가 그렇게 오랜 기간동안 살아온 기록을 온전하게 남겨놓은 곳은 별로 없다.”


  또한 이 알류트족의 이야기는 아메리카인이 어떻게 형성되었는가 하는 문제 해결에도 하나의 문을 열어주고 있다. 알류트족의 조상들은 아시아에 살다가 최소 1만3천년전 지금은 바다에 잠겼지만 당시엔 다리역할을 했던 베링해협의 좁은 육로를 따라 북아메리카로 대규모로 이주해갔던 집단중의 일부였다. 이들의 역사는 아메리카 대륙의 북쪽과 남쪽으로 계속 전진해간 집단들과는 아주 다르다. 알류트족은 비교적 오랜 세월동안 고립돼 있었기 때문에, 과학자들은 이들의 유전자와 고고학으로부터 이들의 선사시대 모습을 좀더 분명하게 읽어낼 수 있는 것이다. 

  어떤 학자들은 알류트족의 해양성 때문에 아메리카에 처음 도착한 이들이 바닷길 여행자들이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2011년 4월 Science 지 1122p.). 뉴욕 푹킾시(Poughkeepsie)에 있는 바사(Vassar) 대학 고고학자인 루시 죤슨(Lucy Johnson)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알류샨 열도는 해안선 루트가 정말 합리적인 길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또다른 일부 학자들은 알류트족이 너무 늦게 이주했기 때문에 육지길이냐 바닷길이냐 하는 논쟁은 아무런 소용이 없다고 논박하고 있다. 오레곤 대학의 고고학자 돈 듀몬드(Don Dumond)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이것은 무척 어려운 문제다.”


  어느쪽이든, 알류트족의 이야기는 바닷길 이주가 어떻게 이루어지는 지를 보여주고 있다. 크로포드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우리는 역동적인 섬이주 현상을 이해해가고 있다.”




두가지 물결


  알류트족은 1741년 처음 역사서에 등장하는데, 당시 비투스 베링이 이끄는 러시아 탐험대가 알류트족을 발견했고, 그 이후로 알류트족의 운명은 영원히 바뀌게 되었다. 당시 알류트족은 바다 포유류 동물들을 사냥하며 직사각형 오두막집에서 살아가고 있었다. 러시아인들은 알류샨 열도를 하나의 모피공장으로 바꾸어 버렸고, 알류트족을 노예로 압박하면서 섬에서 섬으로 쫓아내고 있었다. 역사가들이 추정하기로 1740년 당시 알류트족 인구는 약 1만6천명에 달했으나, 1900년경에는 질병, 기근, 자살 등으로 인구가 10%로 줄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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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

① 거센 바람으로부터의 피난처. 좁은 해협이 베링해의 폭풍으로부터 아닥 섬의 클램 라군(왼쪽)을 보호해주고 있다.

② 깊게 땅을 파다. 고고학자들이 아닥 섬의 클램 라군(왼쪽)과 키스카 섬을 비롯한 알류샨 열도 전체에 걸쳐서 발굴작업을 실시하고 있다. 키스카 섬에서 캐나다 뉴펀들랜드의 메모리얼 대학(Memorial Univ.) 고고학자 베로니카 렉(Veronica Lech)이 바다소(sea cow)의 갈비뼈를 들어보이고 있다.


지도설명 : 활처럼 늘어선 알류샨 열도. 이 열도는 세계에서 가장 긴, 2,000km 길이에 달한다.


  1867년 미국이 이땅을 차지하게 되었고, 이후 알류트족은 좀더 나은 환경에 놓이게 되었다. 1920년경 알류트족의 인구는 증가하기 시작하여 1980년경이 되면 약 3천명에서 8천명까지로 늘어나게 되었다.

  1800년대말부터 학자들이 알류샨 열도를 방문하기 시작했고, 1930년대에 유명한 스미소니언 인류학자인 알레스 흐르들릭카(Ales Hrdlicka)가 수십개의 두개골을 수집하게 되었다. 그는 알류트족이 두 집단의 연속적인 이주에 의해 거주하게 되었다고 결론지었다. 처음 집단은 높고 좁은 두개골(dolichocranic. 長頭型)을 가진 고-알류트족(Paleo Aleuts)이고, 두 번째 집단은 넓고 둥근 두개골(brachycranic. 短頭型)을 가진 신-알류트족(Neo-Aleuts)이었다. 

  이 기본적인 생각은 최근 연구를 통해 확인된 바 있다. 흐르들리카의 두개골중 연대가 3,400-380년전에 해당하는 86개의 두개골을 새롭게 연구해본 결과, 유타 대학의 인류학자 죠안 브레너 콜트레인(Joan Brenner Coltrain)은 사실상 그 두개골들이 이 두집단으로 나뉘어지며, 이중 1,000년전보다 더 오래된 두개골들은 모두 고-알류트족에 속하는 장두형이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콜트레인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이 두 집단은 유전학적으로 서로 다른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고-알류트족에 속하는 두개골이 케네윅인(the Kennewick Man)이나 스피릿 동굴 여인(the Spirit Cave Woman)같은 신대륙의 초기 인류의 전형이며, 이들은 아시아인보다 유럽인에 더 가까워 보인다. 아마도 이들은 시베리아에 살고 있던 유럽인종의 후손일지도 모른다.”


  최근의 유전학적 연구가 이런 차이점을 확인해주고 있다. 최근 유타 대학 유전학자 데니스 오루어키(Dennis O'Rourke)의 연구에 따르면, 흐르들리카의 두개골 69개로부터 뽑아낸 미토콘드리아 DNA(mtDNA)는 현대에 살고 있는 대부분의 알류트족과 같은 신-알류트족이 하플로그룹 D 로 알려진 유전표지를 갖고 있는 공통조상의 후손이라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으며, 또한편 대부분의 고-알류트족이 현재 북미 극지방에 살고 있는 대부분의 원주민 집단과 마찬가지로 하플로그룹 A 유전표지를 갖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흐르들리카는 알래스카 본토에서 온 신-알류트족이 고-알류트족을 대체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콜트레인 같은 다른 학자들은 사실상 후발 이주자들과 선발 이주자들이 같이 공존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발견해냈다. 펜실베니아 브린 모어(Bryn Mawr) 대학의 인류학자 리처드 데이비스(Richard Davis)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그후로도 수백년동안 더 장두형 고-알류트족은 여전히 주위에 아주 많이 분포해 있었다.”


  크로포드와 그의 동료들의 연구에 따르면, 현재 살아있는 알류트족의 약 2/3가 하플로그룹 D 에 속하며, 나머지 1/3은 하플로그룹 A 에 속한다고 하는데, 그것은 고-알류트족과 신-알류트족 사이의 혼혈의 결과인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또한 크로포드 팀의 현대 알류트족 연구결과에 따르면, 현대 알류트족에게도 일부 고-알류트족의 DNA 가 나타나고 있는데, 이것은 그들의 조상이 알류샨 열도로 이주하기 오래 전인 약 13,000년전 아마도 아시아나 베링기아 권역에 머무르고 있을 때, 다른 극지방 원주민 종족들로부터 갈라져 나왔기 때문에 그런 현상이 나타나는 것으로 추정된다.

  신-알류트족은 신체적으로나 문화적으로도 많이 달랐다. 데이비스는 예를 들어 말하기를, 고고학 자료에 따르면 1,000년전 이후로 집양식이 방 하나짜리에서 여러개의 구조로 바뀐다거나, 석기 양식이 더 세련되게 변하는 등의 변화가 나타난다는 것이다. 2010년 『극지(Arctic)』 잡지에서 콜트레인이 동위원소를 사용해 그들의 뼈를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신-알류트족은 바다 사자나 물개 같은 커다란 바다 포유류 동물들을 잡아 먹었지만, 고-알류트족은 새나 해달 같은 작은 동물들을 잡아 먹었다는 것이다. 콜트레인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신-알류트족은 좀더 복잡하고 인구가 많았던 알래스카 반도로부터 이주해왔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좀더 세련된 기술과 계급화된 사회조직을 갖고 있었을 수 있다.”


  미국 어류 및 야생동물 관련 당국(the US Fish and Wildlife Service) 알래스카 지부 소속 고고학자인 데브라 코르벳(Debra Corbett)은 현재 고고학자들이 알류샨 열도 전체에 걸쳐서 연구작업을 벌이고 있는데, 기후변화로 해안침식이 가속화함에 따라 고대의 DNA 를 더 많이 찾아낼 수 있는 매장지들이 추가로 드러나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다른 아메리카 원주민들과 마찬가지로 알류트족은 때때로 두개골에 대한 연구를 허용하는데 반대하고 있다(『Science』지 2010년 10월 8일자 p.166).


  앵커리지에 본부를 두고 있으면서 원주민의 이익을 대변하고 있는 알류트족 협회(Aleut Corp.) 소속 고고학 분야 담당자인 멜빈 스미스(Melvin Smith)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만일 유적에서 유해가 발견되면, 즉시 재매장해야 한다는 것이 우리의 방침이다.”


  알류샨 열도가 고향인 스미스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고학이 원주민인 알류트족으로 하여금 자신들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 더 잘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또한 협회도 때때로 예외조항을 두고 있다고 했다. 예를 들면, 코르벳과 그녀의 동료들은 중부 섬중의 하나에서 발견된 350년 된 한 어린 아이의 유골에 관한 보고서를 한권 쓸 수 있었는데, 그 아이는 신-알류트족과 같은 하플로그룹 D 유전표지를 갖고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또한 동위원소 분석 결과에 따르면, 그 아이는 조개, 바닷새 등을 먹었고, 바다 포유류 동물들에 종종 감염되는 회충, 촌충 등에 감염돼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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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

① 바다의 선물. 알류트족은 카약을 타고 열도에 와서 풍부한 수산물을 획득했다. 19세기 헨리 우드 엘리오트(Henry Wood Elliott) 그림.

② 옛날 방식. 서구인의 정복으로 붕괴된 알류트족 문화(왼쪽 그림), 그리고 1938년 2차세계대전으로 자신의 고향인 섬을 떠나 강제이주당한 알류트족 아이들(가운데 사진), 다행히 전통 예식춤은 보존되었다(오른쪽).

 


동쪽인가, 서쪽인가?


  그런 최근의 매장지 조사결과들은 신-알류트족의 삶에 대한 단서들을 제공해주고 있는데, 그렇다면 고대의 고-알류트족에 대한 상황은 어떠한 것인가? 그들은 어디에서 왔으며, 또  언제 여기에 도착했는가? 20세기에 들어서도 이 멀리 떨어진 섬들에까지 찾아오는 과학자들이 드물었으므로, 오랫동안 그런 질문들은 잊혀져 왔다. 진주만 공습을 감행한 후인 1942년 일본은 앗투(Attu)와 키스카(Kiska)의 서쪽 섬들에 침입해들어와 주민들을 일본에 있는 강제수용소로 데려갔다. 이에 미국은 즉각 아닥 섬에 군사기지를 건설하고 남동부 알래스카에 있는 통조림 공장들을 폐쇄하고 거의 모든 알류트족 사람들을 소개시켰다. 이후로 자신의 고향땅으로 돌아간 알류트족 가족들은 얼마 되지 않았다. 캔자스 주립대학의 고고학자 딕시 웨스트(Dixie West)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알류트족 사람들은 엄청난 고난을 겪었다.”


  알류트족의 선사시대 역사에 관한 연구는 정체되었다. 2차대전 이후에 알류샨 열도는 냉전시대에 돌입했다. 당시 아닥 섬은 군인과 선원들 6천여명이 주둔해 있었던, 민간인의 접근이 제한된 군사기지였다.

  마침내 1990년대말 기지가 폐쇄됐다. 1800년대 이래로 아닥 섬에는 알류트족 사람들이 살지 않았지만, 이제는 일부 사람들이 정착해 살고 있다. 1998년초에는 코르벳, 웨스트 등의 고고학자들이 지구상의 마지막 대이동 사건의 실마리를 밝혀내려고 방문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알류트족이 어떻게 이주해왔는가 하는 가장 기본적이면서 논쟁이 많은 문제중 하나와 씨름을 벌이기 시작했다. 즉 알류트족은 서쪽에서 동쪽으로, 아니면 그 반대로 이주해왔는가? 만일 그들이 알래스카로부터 서쪽으로 이동해왔다면, 그들은 대이동 집단의 일부로써 먼저 베링기아 육로 다리를 건너 아메리카 대륙으로 들어왔음에 틀림없다. 그러나 만일 그들이 러시아로부터 왔다면, 베링해를 남쪽으로부터 횡단하는 지름길이 대이동 집단이 택한 육로 다리와는 별개의 통로 역할을 했을 것으로 보인다.

  일부 러시아 고고학자들은 주장하기를, 최초의 알류트족 사람들은 러시아의 캄챠카 반도 부근에 있는 코맨더 제도(the Commander Islands)를 거쳐 서쪽으로부터 알류샨 열도로 진입했다는 것이다.(알류샨 열도의 서쪽 끄트머리에 있는 코맨더 제도는 러시아 영토이고, 나머지 섬들은 모두 미국 영토이다.)  그러나 미국 고고학자들은 지적하기를,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법에 의해 9천년전으로 알려진 알류샨 열도에서 가장 이른 시기의 고고학 유적지가 동쪽에 있는 아낭굴라 섬(Anangula Island)에 위치해 있다는 것이다.

  이 문제를 풀기 위해, 웨스트와 코르벳 등의 학자들은 알류샨 열도에서 발굴조사와 방사성 탄소연대 측정을 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결국 서부 섬들이 비교적 늦은 시기인 약 3,500년전에 처음 사람의 발길이 닿았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그리고 2005년에는 클램 라군이 내려다 보이는 유적지 ADK-171에서 화산재에 파묻힌 생선뼈를 방사성 탄소연대로 측정한 결과 7,000년전이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이것은 동쪽에서 서쪽으로 이동한 양상을 명백히 보여주고 있는 증거인 것이다. 모스크바에 있는 세베르초프(A.N. Severtsov) 생태진화 연구소의 고생태학자 아르카디 사비네츠키(Arkady Savinetsky)는 다음과 같이 동의하고 있다.


  “그것은 마치 알류샨 열도가 동쪽으로부터 정착돼갔던 것으로 보여진다.”


  최근의 유전학적 연구들은 고고학적 증거들을 더욱 보강해주고 있다. 오늘날 자신들의 조상땅에 얼마 살고 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알류트족 사람들은 자신들이 어디에서 왔는지를 기억하고 있으며, 이런 기억들이 자신들의 지리학적 및 유전학적 초상화를 놀랄만큼 뚜렷하게 만들어내는데 도움을 주어왔던 것이다. 각 섬에 있는 공동체들은 각기 다른 춤축제 전통을 갖고 있는데, 여전히 오늘날에도 이들이 입고 있는 축제용 의상들로부터 이들의 기원이 밝혀질 수 있다고 현 아닥 섬 이장이며, 성 죠지 섬(St. George Island)에서 태어난 마이크 스웨초프(Mike Swetzof)는 말한다.

  크로포드 팀은 현재 11개 섬과 앵커리지로 쫓겨나 살고 있는 사람들을 포함하여 모두 250명 이상의 알류트족 사람들에게서 뽑아낸 mtDNA 를 분석하여 극지방의 다른 곳에 살고 있는 원주민들의 mtDNA 와 비교해왔다. 알류트족은 당연히 서쪽에서 동쪽으로 이주해왔을 것으로 우리가 예상해왔던 것과는 달리, 캄챠카 반도 원주민들과 유사한 유전적 요인을 전혀 갖고 있지 않았다. 또한 가족이 살아온 섬과 모계로 유전된 mtDNA 사이에 뚜렷한 상호연관성도 드러났다. 크로포드와 그의 동료들은 2010년 『Human Biology』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알류트족은 목걸이에 달린 구슬처럼 공간적으로 분포해 있다.”


  최근의 고고학적 연구결과에 따르면, 실제로 mtDNA 하플로그룹들은 서로 문화전통이 조금씩 다른 세 지역, 즉 동부, 중부, 서부 알류샨 지역들에 상응하는 세 집단으로 나뉘어질 수 있다고 한다. 크로포드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알류트족에게 일어났던 모든 일들이 모두에게 밝혀진다는 것은 정말 나에게 커다란 감동을 주는 일이다. 유전학과 지리학과의 상호의존성은 엄청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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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설명 : 차가운 바다. 한대성 어류인 대구가 혹한기 시기에 인류가 처음 알류샨 열도로 이주했다는 사실을 암시하고 있다.


  일리노이 대학의 라이판 말리(Ripan Malhi) 역시 mtDNA 하플로그룹 종단면도 속에 동쪽에서 서쪽으로 이동한 아주 명백한 양상이 들어있다는 사실에 동의하고 있다. 하지만 그는 그것이 9천년전에 발생한 이주의 유물인지, 아니면 최근에 알류샨 열도를 따라 이루어진 움직임을 반영하는 것인지에 의문을 품고 있다.(부계로 유전된 Y 염색체에서는 그런 분명한 지리학적 양상이 드러나지 않고 있는데, 그것은 아마도 러시아 남자들과 알류트족 여자들과의 혼혈 때문에 생기는 현상일 것으로 학자들은 추정하고 있다.)

  그러면 알류트족과 가장 가까운 친척은 오늘날 누구일까? 과학자들이 그것에 대해 연구하고 있지만, 오늘날까지 알류트족의 전체 게놈(genome) 지도를 작성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mtDNA 분석자료들은 알류트족을 시베리아 원주민 및 과거 베링해협 육로 다리의 일부였던 러시아의 축치반도 원주민들과 하나의 집단으로 엮어놓고 있다. 크로포드가 말하기를, 알류트족은 알래스카 에스키모족과 아무런 mtDNA 유사성을 보이고 있지 않는데, 이것은 두 집단이 비교적 늦은 시기에 분화했을 것이라는 초기 가정을 반박할 수 있는 자료라는 것이다. 알류트족, 에스키모족, 그리고 아시아 원주민 집단과의 상호 mtDNA 비교분석작업은 알류트족과 에스키모족이 원래 아시아에서 같은 공통조상을 갖고 있었는데, 최소 1만1천년전 아마도 아시아 지역에 있을 때 각자 분화되어 다른 유전적 길을 걸어갔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즉 두 집단은 서로 다른 이주행로를 걸었을 것으로 보인다. 말리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Science』지, 2011년 9월 23일자 p.1692).


  “이것은 엄청난 인구팽창 현상이 발생하여 베링기아를 빠져나와 아메리카 대륙으로 이동했으며, 이들 이동 집단들이 멸족, 혼혈, 팽창 등의 역동적인 역사과정을 겪었을 것이라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카약을 타고 온 이주


  안개가 많이 낀 어느 6월 마지막 목요일, 알래스카 대학의 다이앤 핸슨(Diane Hanson)이 이끄는 고고학 팀이 비행기를 타고 아닥 섬을 향해 3시간반을 날아갔으나, 심한 안개로 섬위를 빙빙 돌다가 앵커리지로 되돌아갔다. 다음 일요일 이들은 미국 어류 및 야생동물 관련 당국이 학자들을 위해 제공한 배 티글락스(Tiglax)를 타고 아닥 섬 서부에 있는 유적지로 향했다. 이들은 그곳에서 2달간 야영생활을 하면서 알류트족의 선사시대 집 유적들을 발굴하였다. 내륙쪽에서 행해진 이 최근의 발굴작업으로 고대 알류트족 사람들이 단지 해안가에만 거주했던 것이 아니라, 섬 전체에 걸쳐서 다양하게 주거지 환경을 활용해 살았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러나 알류트족 생활에 있어서 바다의 영향력을 부인할 수는 없다. 또한 알류샨 열도에 도착한 사람은 누구라도, 또 언제라도 배를 이용해 생활을 영위해나갔었다는 사실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빙하시기에 알류샨 열도의 동쪽에 있는 대부분의 섬들은 베링기아 영역의 일부분이었다. 하지만 아닥 섬을 포함한 알류샨 열도의 나머지 섬들은 2만년이상 동안 바다에 둘러싸여 있었던 것이다.

  러시아인들이 만난 알류트족 사람들은 표류하는 통나무나 고래뼈로 골조를 만들고 그위에 물개가죽을 씌운 카약이나 우먁(umiak. 카약보다 큰 보트)을 타고 섬사이를 왕복해 다녔다. 그런 보트의 유물들이 약 2천년까지 소급되는 수많은 유적지에서 발굴되었다. 그래서 학자들은 유물들이 오랜세월동안 보존될 수는 없지만, 최초의 알류트족 사람들도 비슷한 형태의 보트를 갖고 있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웨스트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동쪽으로 1천km 떨어져 있는 어느 섬에서 가져온 흑요석이 아닥 섬에서 발견된다는 것은 알류트족 사람들이 배를 타고 사방팔방 다 돌아다녔다는 사실을 말해주는 것이다. 바다는 아주 위험한 곳인데도 말이다.”


  알류샨 열도가 아메리카 대륙보다 인류이동이 늦었다는 사실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1970년대 연구에 따르면, 약 9천년전까지 알래스카 반도에서 알류샨 열도까지의 길은 거대한 빙벽으로 가로막혀 있었다. 죤슨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아마도 고-알류트족은 빙하로 뒤덮힌 해안가에 도착하여 그곳에서 밤을 지새워야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곳은 그들이 살만한 장소는 아니었다.”


  그러나 일단 해상루트가 열린 다음에는 고대 알류트족의 이동은 빨리 이루어졌다. 데이비스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최초의 이주민들은 아낭굴라 섬에 도착하여 얼음이 뒤덮힌 자갈밭 위에서 야영을 했다. 이것은 이 작은 섬들이 해빙기에 들어서자 즉시 알래스카 반도로부터 사냥꾼들이 몰려들어 풍요로운 자원을 취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일부 학자들은 말하기를, 사실상 섬에서 얻을 수 있는 해상 식량자원은 육지에서 얻을 수 있는 정도와 비슷하거나, 아니면 더 풍부한 것일 수 있다는 것이다. 듀몬드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알류트족 사람들은 육지와 동등하거나, 더 풍요로운 환경에 완전히 적응하여 인구가 증가했고, 그런 생활방식을 고수해내갔다.”


  동쪽에서 서쪽으로 이주해가는 흐름이 바다가 아주 차가와지면서 먹이자원이 최고도로 많아지는 시점과 상호연관성이 있을 수 있다는 새로운 증거들이 나타나고 있다. 2010년 발표된 사비네츠키의 논문 1권에 따르면, 알류샨 열도 서부에 있는 섬 3개에 처음 인류가 이주한 때는 3,350년전부터 시작된 긴 혹한기 동안이었다는 것이다. 방금 출판된 논문 2권에서 사비네츠키 팀은 아닥 섬에 있는 7천년전 유적지 ADK-171에서 발굴된 어종의 13%가 한대성 어종인 대구였다는 사실을 밝히고 있다. 이것은 아닥 섬 역시 혹한기 동안에 인류가 처음 이주했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사비네츠키와 웨스트는 혹한기에 베링해의 거센 바람이 잦아들었을 것이라면서, 북태평양이 서늘해지면서 바람이 잦아든 시기가 지속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웨스트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서늘한 기온이 바람이 생기는 것을 억제하여 높은 파도를 막아주면서 더 많은 바다 먹거리를 얻을 수 있게 해주는 것이 아닐까요? 만일 그렇다면 그런 시기에 사람들은 더 많이 돌아다니면서 새로운 장소를 찾아낼 수 있었을 것입니다.”


  크로포드는 말하기를, 고대 알류트족이 새로운 곳을 찾아나설 때에는 아마도 가족단위로 큰 섬을 떠나서 멀리 있는 서쪽 섬에 정착했을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왜 그렇게 계속 서쪽으로 나아갔을까? 새로운 땅을 찾아서? 아무도 그이유를 알고 있는 사람은 없다. 프랑스 빠리의 자연사 박물관 고고학자인 크리스틴 르페브르(Christine Lefevre) 같은 일부 학자들은 그것을 “계속 새로운 땅을 찾아가려는 끝없는 욕구”와 같은 인간본성으로 돌리기도 한다. 코르벳은 자신도 항상 그것에 대해 의문점을 갖고 있었다고 말한다.


  “어느 구름한 점 없이 맑은 날 나는 아닥 섬에 있었다. 나는 산에 올라 멀리 있는 섬들을 바라보면서 상상에 잠겼다. 마을과 마을사람들, 물위에 떠있는 보트들, 집에서 올라오는 연기 등등. 그옛날 그섬들에는 실제로 그렇게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하지만 알래스카 반도와 동부 알류샨 열도에는 여전히 비어있는 섬들이 많이 있었다. 사람들은 여전히 수평선을 노려보고 있었다. 그들은 계속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 기고자 : 마이클 발터(Michael Balter) 

  번역자 : 봉우사상연구소

           번역위원  정재겸      

  번역등재일 : 2012년 1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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